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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2 조회수1,807 추천수4 반대(1) 신고

 


2020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 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복음 요한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들 중년의 나이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만난 후 얼마 안 지나

그 무게감이 사라집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당시에

사용했던 말투가 나옵니다.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욕도

 섞어가면서 말이지요.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그때 시간 낭비를 참 많이 했어.”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당구장, 만화방,

오락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다른 것들을 참으로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그때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 나이잖아.”
당시의 어른들은 시간 낭비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한다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후회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먼 훗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기 때문이며,

그 시간 역시 중요했던 시간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간이든 의미가 담겨 있다면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느냐?”

하면서 떠날 구실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도

이 정도였으니, 당시 예수님을

반대했던 종교지도자들의 적대적인

모습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힘들고,

함께 하는 것이 힘들었을까요?

예수님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또 함께하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주님께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면

잘못된 길에 빠질 일이 없다.

(공자)

희망이 기적이다

“희망이 기적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본 멋진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희망을 보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상황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형제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유 있게 살고 있지만,

 옛날에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서

한밤중에 빚쟁이들을 피해서

도망을 쳤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망치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성당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당 안에서 큰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분이

계셨는데, ‘이분을 잊고 있었구나’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하고 계셨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얻은 힘으로 재기를 해서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주님을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뒤로 모든 잘 풀렸습니다.”
이분 역시 희망을 통해

기적을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희망이 기적입니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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