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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4) 부르심 (요한10:1~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4 조회수1,608 추천수0 반대(0) 신고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4) 부르심

(요한10:1~1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 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 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양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양떼를 불러 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 서 간다양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 가지 않는다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10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성도들의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우발적이며 즉흥적인 부르심이 아닙니다뿐만 아니라 양들의 자격이나 조건이나 열심을 근거로 부르시는 부르심도 아닙니다목자의 부르심은 창조이전에 미리 정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향한 부르심이며결국에는 당신의 자녀로 완성시키시고야 마시는 부르심입니다이러한 것은 성경이해의 핵과 같은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그 부분을 확실하게 이해를 하고 넘어 가야 합니다다시 한번 로마서 8장 28절 이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30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미리 아신 당신의 백성들을 그렇게 구별하시고 그 주위에 수평선으로 둘러놓으신 것입니다창조이전에요그리고는 그들을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 순서를 잘 보세요부르심의 왼쪽으로는 미리 아심과 미리 정하심이 있고 부르심의 오른쪽으로는 의롭다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이 있습니다그것은 의도된 순서입니다사도는 그러한 순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마음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이 역사 속에서 실제화 되어지는것 사이에 부르심이라는 역사와 시간 속에서의 실제화의 시점을 놓아둔 것입니다이것은 물론 논리적인 순서입니다그러니까 부르심과 의롭다하심이 역사 속에서 미리 아심과 미리 정하심이 실제화 되어지는 모습인 것입니다.

 

(사도13:46~48) 46 그러나 바울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하게 이렇게 대꾸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 47 주께서 우리에게, '나는 너를 이방인의 빛으로 삼았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의 등불이 되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48 바울로의 말을 듣고 이방인들은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작정된 사람들은 모두 신도가 되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가 비시디아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그들을 핍박했지만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은 다 믿더라고 하지요이렇게 미리 정해 놓으신(프로 호리조하느님의 백성들이 나 이제 하느님을 믿겠습니다.’하고 하느님의 울타리 속으로 하나하나 들어오는 것을 부르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갈라1:15~16) 1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 주셨고 16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그 때 나는 어떤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고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로는 다마스코 길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그런데 사도 바울로는 자신이 이미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함과 부르심을 받았고 다마스코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이렇게 부르심은 미리 아심즉 하느님의 언약과 계획그리고 미리 정하심이 역사와 시간 속에서 실제화 되는 첫 시점(始點)인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는 이 역사와 시간 속에서 의롭게 되어져 가는 것이고 영화롭게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5:1)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갈라2:16) 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3:21~22)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롭다함은 항상 믿음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의롭다하심은 우리에게 믿음이 들어올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에게 믿음이 들어오는 시점은 언제입니까바로 부르심을 입을 때입니다그러니까 의롭다하심은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 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의 몸까지 완전히 구속이 되어 이제 더 이상 죄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로 새롭게 창조가 되는 그 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이 의롭다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을 과거시제로 표현을 했을까요아직 우리는 의롭게 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그냥 의롭다 일커르진 것일 뿐입니다그리고 우리는 영광의 지점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길입니다그런데 왜 성경이 과거시제를 사용하여 우리의 의와 영광를 이야기할까요계획 속에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절대 자신의 일을 실패하거나 중도에 포기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에 성경이 豫辨적 과거시제를 사용하여 의롭게 되었다영광스럽게 되었다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0절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하시고 그들을 영광롭게 하셨다고 해야 구원의 이가 맞지 않습니까그런데 사도는 굳이 의로움을 그 사이에 집어넣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이미 그는 28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에 찬 선포를 했습니다그 말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반드시 하느님의 최종 목적지인 의 지점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간단히 말해서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부르심을 입은 그 순간부터 영광의 지점까지의 모든 시간이 다 의로움의 시간인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바로 聖化에 관한 정의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화(聖化)를 내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으로 변했는가로 측정을 하곤 합니다聖化는 우리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옛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굳이 聖化의 분량을 잰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자아에서 벗어났는가를 그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지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지게 변했는가로 판단 기준을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주 훌륭한 삶을 살면서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라나는 선천적으로 온유하고사 랑이 많고섬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그런 파렴치한 죄인들의 범주로 매도당하고 싶지 않아앞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삶을 잘 살아내어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아야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느님 앞에서는 극악한 죄인인 것입니다聖化는 겉모습의 변화가 아니라 내가 라는 존재를 포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옆 십자가에 달려 막판 뒤집기로 구원을 얻은 그 강도처럼 내가 지금까지는 나의 힘과 세상의 것들을 행복과 만족의 조건으로 삼아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그간의 많은 경험들과 배움들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이 세상의 힘을 쌓아서혹은 나의 명성과 인기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절대자에게 온전히 순종할 때에 비로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알았다이제부터 난 하느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아야지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들이 聖化의 과정 속에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고후3:18) 18 우리는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 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 줍니다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이것이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잘 보세요우리의 목표지점은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하는 것입니다여기에서 모습이라고 번역이 된 에이콘이라는 단어는 단 순한 겉모양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닙니다헬라어 에이콘은 내적인 일치를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그래서 그 단어는 하느님의 모습(형상)이신 예수님에게 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고후4:4) 4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골로1:15)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내적 진수와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과 연합되어 일체를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은 두 분의 뜻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의미이지요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완전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물론 삼위일체의 하느님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만 우리의 제한된 이성의 이해의 범위에서 그 일체라는 개념을 설명해 드리기 위해 그런 단어를 쓸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러니까 형상에이콘이 라는 말은 자기가 부인된 완전한 받아들임이 전제되는 단어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가 도달해야 할 영광의 지점은 우리가 하느님께 완전히 복종하고 순종하는 자로 완성되는 지점이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한층 개선되고 발전된 행위를 내어놓아야 하는 지점이 아닌 것입니다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내적인 일치를 이루어 내어 하나로 포개어지는 그런 상태가 영광의 상태인 것입니다따라서 聖化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던 옛 자아가 죽고 하느님 앞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모든 순간을 총칭하는 것입니다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이며실패할 수 없는 것이며중도에 포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신학에서는 그러한 것을 가리켜 견인이라 부릅니다성도에게 주어진 구원이 절대 중도에 포기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한 성도의 견인에 관한 내용은 로마서 8장에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로마서 8장 전체는 바로 그러한 성도의 구원의 최종성과 확실성과 안정성에 관해 무려 서른아홉 절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는 장입니다.

(로마8:35~39)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환난입니까역경입니까박해입니까굶주림입니까헐벗음입니까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36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성도는 많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그때 성도들은 혹시 자기가 그러한 시련과 환난을 다 감당해 내지 못하고 실패하고 실족하게 되어서 결국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되지요그러나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절대 그러한 고난 속에서 자폭할 수 없다고요. 37절을 보시면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데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결단과 인내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긴다고 말을 합니다하느님이 우리를 반드시 이기게 만드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죽이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과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성도의 시선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함이기 때 문입니다.

(고후1:8~9) 8 형제 여러분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리려고 합니다그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을 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9 그러나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난은 우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붙이는 역할을 할지언정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내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이제 35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환난입니까역경입니까박해입니까굶주림입니까헐벗음입니까혹 위험이나 칼입니까?의 의미가 이해가 가지요?

마찬가지로 죽음이나 생명천사들현재일장래일능력높은깊음다른 아무 피조물들도 절대로 우리의 구원에 걸림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8:38-39) 38 나는 확신합니다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조금 이상한 것이 없으세요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대적의 목록에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등이 들어가 있습니다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죽음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요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으므로 우리는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하고 죽음을 이긴 자들이 되었기에 죽음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죽음과 생명은 하나로 묶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시편44:22) 22 당신 때문에우리가 날마다 죽임을 당하며 도수장의 양처럼 찢기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 시편 기자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입니까생명에 대한 애착입니다자신에게는 생명이 너무나 소중한데 하느님께서 종일 자기를 죽음에 내어 놓은 것처럼 힘이 들고 자신이 도살할 양처럼 여겨짐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그러한 생명의 스러짐에 대한 불안함도 우리 성도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죽음과 생명의 열쇠를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묵시1:18) 18 살아 있는 존재이다나는 죽었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고 영원무궁토록 살 것이다그리고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살려 놓으시면 살아서 충성이요 우리를 죽이신다 할지라도 충성스럽게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죽음도 생명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와 권세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여기서 천사와 권세 자들은 악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그들이 하나느님의 백성들을 더 이상 참소 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요?

(골로2:15) 15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밝히 드러내시고라고 번역이 된 부분은 포로로 삼아 구경거리로 만드시고라는 의미입니다그러니까 마귀의 세력들은 우리를 참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미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그러면 현재 것은 무엇일까요현재 것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현재에 우리가 당하는 좌절과 실망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모두 지칭하는 것입니다.

(로마8:34) 34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아닙니다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 계십니다어디에 계시지요우리 안에 계십니다우리를 하느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게 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따라서 우리의 현재일 들은 모두 하느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아래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히브13:5) 5 돈을 위해서 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주님께서는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겠고 버리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베드1:5) 5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힘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십니다.

 

(2베드1:3) 3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게 하신 그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우리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 주님이 하느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도 표현을 합니다.

(히브1:3) 3 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느님의 보좌는 그 분의 권능을 상징하는 단어라 했지요당신의 모든 계획을 완성하시고 자기의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의 예배를 받으시는 그러한 모습을하느님께서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앉으시는 것을 사바쓰안식이지요형체도 모양도 없으신 하느님이 어디에 앉으신다는 개념 자체가 엉뚱한 것이니까요마찬 가지로 우리 주님이 그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표현은 우리 주님이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완성의 지점에서 안식을 하고 계시는 모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주님은 그러한 안식의 자리에 앉으시는 구속사의 결론을 확실하게 정해 놓으시고 지금 그 자리를 향해 열심히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의 현재일은 모두 합력하여 우리의 선에 기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히브10:12~14)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오직 한 번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이것은 영원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13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 아래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그분은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거룩하게 만드신 사람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장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요한묵시록 5장에 보면 장래일이 적힌 책이 한권 나오는데 그 어느 누구도 그 책의 봉인을 뗄 수 가 없습니다그런데 유다지파의 사자다윗의 뿌리이신 예수께서 그 책을 여시고 봉인을 떼십니다그러니까 장래일도 모두 주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높음은 세상 권세 잡은 자의 기고만장함을 지칭하는 것이고 깊음은 지옥의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우리 주님은 땅 아래 곳까지 내려가셨던 분이십니다.(에페4:8-9)그러나 거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높아지신 분이십니다.

(필리2:8~9)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아니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게 목자의 부르심입니다그래서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은 안전한 것입니다아니 안전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니 그 어떤 것에도 자폭하지 마시고 잘 견뎌 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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