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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5 조회수2,14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5월 5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복음 요한 10,22-30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신학생 때 고해소에 들어갔다가

 고해신부님께 엄청나게 혼나고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제 죄를 씻고자 들어갔다가,

죄를 더 만들고 나오게 되었지요.

 그 신부님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

미움의 감정이 생기면서 죄가

 더 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어서는 절대로 고해소에서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제가 된 후 지금까지 그때의

다짐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은 없었지만,

사실 화가 났던 적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화가 올라오는지 모릅니다.
고해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들도 분명히 많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쩌면 해치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판공성사 봐야

한다는 말에 억지로 들어온 것만

 같습니다. 이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과연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저를 내쫓았던 그 고해신부님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고해성사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못

보는 것이 답답하셨겠지요.
주님께 이렇게 형식적으로

다가서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자비와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커다란 기쁨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둘러싸서 말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형식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믿을 만한 표징을

보여달라고 계속 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제까지 충분히

말씀하셨고, 또 충분히 행동으로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자기들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이면서도

목자가 앞에 있음에도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목자라고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의 양들은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릅니다. 이렇게 알아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서야 가능합니다. 그냥 형식적인

 마음으로 곁에 서 있기만 하다면,

또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높이려고만 한다면,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가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본성에

따라 생명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

아가는 착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평범한 것에 사랑이

더해지면 놀라운 것이 된다.

(김한승)

마이너스 부분은

두 개의 플러스를 만듭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자

연이 신체 기관의 결함을 매우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보상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시력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청각과 후각이 예민해지고,

신체결함을 가진 사람은 이 부분을

보상받기 위해 다른 쪽으로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마이너스 부분을

발견하면 두 배의 플러스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서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 역시 우리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결국, 나의 부족함은 또 다른

멋진 나를 만들어 애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부족함’ 자체에 묻히고 맙니다.

 그 부족함 자체가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말입니다.
부족함, 단점을 발견하면

곧바로 자기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입니다.

마이너스 부분은 두 개의

플러스를 만드니까요.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다인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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