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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9 조회수1,89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5월 9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복음 요한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집필했을 때부터 완결에

이르기까지 26년이 걸렸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을

4년 동안 준비하고 6년의 집필

기간을 걸쳐서 완성했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장길산’을 11년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하나의 작품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준비하고

집필했기에 이러한 대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늘 서두르며 삽니다.

어쩌면 조바심을 늘 내면서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두르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결과의 질을 떨어뜨리고 개인의

역량을 저하합니다. 그런데도

 불안감에 한군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데

가지고 있는 톱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빨리 나무를 베어서 장에 팔아야

한다는 이유로 무딘 톱으로 계속해서

힘만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힘을 쓰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톱날을

날카롭게 가는 것이 옳을까요?
주님께 기도하면서 머무는 것이

 이렇게 톱날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시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이 세상을 잘 살 힘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

조바심과 불안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알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더욱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으로 당신 모습으로

보여주심으로써,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들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느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주님을 아버지로 알지는 못하지요.

 그래서 필립보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사 청했던 것입니다. 아직

믿음의 눈이 떠지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살아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낳으신 분의

모습을 당신 안에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완전한 표상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신성을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신 것은

두 분의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래서 주님 안에서 하느님을

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 안에 머무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일에만 몰두하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키르케고르)

무기력한 학습

무기력이 학습된다는

심리학자 마크 셀리그만의

실험이 있습니다.
그는 개 24마리를 8마리씩

 세 집단으로 나누고 탈출할 수

없도록 철창을 두른 방에 가두었습니다.

이후 바닥을 통해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집단은 방 한쪽에

차단 장치를 설치해서, 이 차단 장치를

건드리면 전기충격이 멈추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기충격에 힘들어했지만,

우연히 차단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반복적인 학습이 일어나니 전기충격이

오자마자 차단 장치를 눌렀습니다.

두 번째 집단은 아무런 차단 장치 없이

철창에 가두었습니다. 전기충격이

가해지면 속수무책으로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집단은 충격을

가하지 않은 채 철창에 가두었습니다.
24시간이 지난 후, 이제 실험조건을

바꿨습니다. 이번에는 높은 울타리를

 제거하고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낮은 울타리 안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전기충격을 가하자 첫째, 셋째

집단의 개들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안전한 곳으로 피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집단의 개들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학습된 무기력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단정 짓는 무기력의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습이 되지 않도록

늘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은 희망 그 자체이십니다.

절망 안에서 희망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주님 안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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