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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21 - 성모의 집 (에페소/터키)
작성자양상윤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0 조회수1,638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모의 집

  

 

“성모의 집”은 성모님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을 보냈던 곳으로 

오래 전부터 이미 예루살렘에 성모님의 선종장소로 알려진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2세기경부터 성모님의 “에페소 선종 전승”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 중에 평소 성모 신심이 깊었던 독일 “안나 가타리나”수녀(1774-1824)는 

환시를 통해서 본 성모님의 생애를 책으로 기록했는데 

거기에 성모님이 마지막으로 지냈던 집의 형태부터 구조 그리고 그 주변의 환경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이후1881년 “아베 줄리앙 꾸예”신부는 에페소에서 발견된 한 고대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안나 가타리나”수녀가 기록한 환시에서 본 성모의 집과 정확히 일치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당시 크게 주목 받지 못하다 약 십여 년 후에 

“폴린” 신부와 “융” 신부 그리고 “마리 드 망다 그랑시” 수녀에 의해 재 발견되고 

폐허처럼 남아 있는 그 집이 그 곳에 살던 "초대교회" 후손들에게 거룩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성모님의 “에페소 선종 전승”의 신비성을 높여주었고 

마침내1896년 교황 레오13세로부터 성지로 인정 받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성모님의 “예루살렘 선종 전승”과 “에페소 선종 전승”이 서로 우위를 다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성서에 요한 사도께서 성모님을 모셨다고 나와 있으니 

요한 사도가 지냈던 지역에 성모님도 함께 지냈던 것이 맞는 것 같아 “에페소 선종 전승”이 더 신뢰가 가긴 하지만 

그 장소가 어디든지 간에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만약 성모님의 선종 장소가 나의 “성모 신심”에 영향을 준다면 모르겠지만 어느 곳에서 선종하셨던지 간에 

예수의 어머니인 것, 그리고 예수의 가장 충실한 제자였다는 것에는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 성전이 마을과 가깝게 있는 것과는 다르게 성모의 집은 마을과 한참 떨어진 산 중턱에 있고 

또 대중 교통이 없기 때문에 관광 버스를 이용하는 단체 관광객이 아닌 이상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택시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오르면서 차창 밖으로 보니 

산길치고는 많이 가파르지 않고 포장도 잘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텐데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가고 있는데 

생김새가 그냥 딱 봐도 중동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는 단체로 왔는지 깃발을 들고 무리 지어 걸어가는 청소년들도 꽤 있다

물론 중동이라고 해서 전부 무슬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터키만해도 천주교 성당이 있고

레바논이나 이집트등에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공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숫자가 무슬림들과 비교해서 절대적으로 소수인건만은 확실하다

걸어서 올라 간다는 것은 분명히 이곳까지 일부러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일 텐데 

특별한 날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날에 그 많은(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비율에 비해서)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성모의 집”은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이슬람 신자들도 성지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이곳으로 성지 순례를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때 걸어서 올라가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이슬람 신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원칙적으로 서로 구약을 공유하고 인정하고는 있기에 

구약과 관련된 그리스도교의 성지는 이슬람교에서도 성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신약 시대의 인물이고 또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예수의 어머니와 관련된 장소를 성지로 여기고 순례한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우리 천주교 신자가 이슬람교의 성지를 관광목적이 아닌 

순수 신앙적인 순례의 목적으로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리스도교와 뿌리가 같은 종교 이외에) 다른 종교의 성지를 

관광목적이 아닌 신앙적 순례의 목적으로 찾아가본 적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관광 목적으로 가거나 “근처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하면서 가본적은 있다

사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슬람교인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편협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인데 

이런 면에서 보면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처럼 여러 분파가 있고 또 같은 분파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천주교의 성지를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까지 순례의 목적으로 찾았던 사람은 최소한 천주교를 적대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같은 성지 순례일지라도 우리 천주교 신자가 그곳에 찾아가는 마음가짐과 

그들의 마음가짐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텐데 

그들에게 예수는, 마리아는 그리고 성모의 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많이 궁금해진다.

 

 

성모의 집 성당

  

성지에 있는 성당은 아주 작고 단순하게 꾸며져 있으며 

워낙 좁아서 그런지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따로 나뉘어져 있고 사진 촬영은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따로 나뉘어져 있지 않거나 사진 촬영이 허락된다면 

드나드는 사람들과 실내를 배경으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서로 엉겨서 

그 좁은 성당 안이 혼잡해질 것은 불은 보듯 뻔하다

성당이 워낙 작고 단순한지라 시간이 걸릴만한 특별한 볼거리가 있지도 않고 

또 다음사람들을 배려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주고 밖으로 나와야 하지만 

다행히도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의자에 앉거나 한쪽으로 비켜서서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한 처자가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고 나도 한쪽으로 비켜서서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얼마큼 기도를 하다 잠깐 고개를 들어 제대를 응시하는데 

앞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는 처자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고 옆으로 살짝 보이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기도문의 제목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영어로 "Pray for Vocation" 우리나라 말로 하면 "성소를 위한 기도"정도가 된다,

보고 싶어서 본 것이 아니라 나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성당이 워낙 좁기도 하고 또 대각선 앞쪽이라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내 묵주기도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를 끌어 당겼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성소에 대해 기도를 하면서 울고 있는 것일까

수도회에 입회하려는데 끊지 못할 속세의 사정이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수도생활하기를 원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공동체를 떠나야 하는 사정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본인 수도생활에 대한 묵상중인 것일까

중동의 어느 나라 사람일까? 영어로 된 기도문을 보고 있으니 영어권 어느 나라 사람일까? 등 

여러 가지 질문이 파도처럼 일어나더니 “그럼 나 자신의 성소는?” 이라는 질문이 더 큰 파도가 되어 내게로 밀려왔다

결국 처음 묵주기도를 시작할 때의 지향과는 다르게 나와 그녀와 모두의 성소를 위한 묵상과 기도로 끝을 맺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 성소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묵상한다

아마도 내가 수도자로서, 사제로서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될 것이다

아니다,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공동체를 떠나게 되더라도 계속될 것이다

성소라는 것이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이고 

우리모두는 각자의 모양대로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그 부르심은 우리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닌 전 생애에 걸친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인간적인 모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응답하고 받아들인 성모님께서 마지막 생을 보내신 이곳에서 

“성소”에 대해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그분의 큰 은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10, 20, 30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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