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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의 아들들[22]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10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2 조회수1,610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2. 요셉의 아들들

 

요셉은 자신에게 맡겨진 재상직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자신을 신임하는 파라오에게 충성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백성 전체를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일한다. 그는 중앙에서 지시만 하는 관리가 아닌, 이집트 전국을 돌면서 민정을 철저히 파악하였다. 칠 년의 대풍에도 흥청망청하지 않고 부지런히 창고를 지어 식량을 비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어지는 대 흉년에 대비하여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대풍 기간인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아들이 태어났다. 온의 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아 준 아들들이다. 큰아들은 므나쎄라하고 둘째는 에프라임이라 이름 짓는다. 므나쎄는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고생과 내 아버지의 집안조차 모두 잊게 해 주신 것을 의미하면서, ‘나로 하여금 잊게 하셨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요셉은 참으로 잊고 싶은 게 많았으리라.

 

의로운 요셉은 아들 이름 하나 짓는데도 하느님을 기억한다. 늘 함께하시는 그분께서 잊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리면서 지었단다. ‘므나쎄’, 참으로 잊을 게 많은 요셉이다. 십삼 년 전 그는 도탄의 그 구덩이를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잘 있는지 찾아간 곳이다(37,14). 거기에서 그는 시기하는 형들에게 떠밀려 구덩이에 던져졌고,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겨우 끌어내어 져 목숨을 건졌지만, 끝내 그 상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렸다.

 

그 구덩이에서 요셉은 , 살려줘!’ 하며 한도 없이 외쳤으리라. 그렇지만 이미 마음이 뒤틀린 형들은 요셉의 비명을 듣고도 모른 채를 하였고 근처를 지나는 상인들에게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 드디어 요셉을 두고 그의 형들과 상인들 간에는 추잡스러운 거래를 하였다. 이 얼마나 비정한 상거래일까? 구덩이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요셉을 가운데에 두고, 동생을 단돈 몇 푼에 팔려는 파렴치한 형들, 돈이 된다면 남의 혈육까지도 살려는 악덕 상인의 상행위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모습이다.

 

참으로 상상하기도 싫은 야만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보자니 치가 떨릴 지경이다. 이런 거래는 사람을 사고파는 거다. 그것도 한집에 사는 친동생을 낯선 상인에게 팔겠다는 거다. 그런 형들을 보기 위해 반나절 이상이나 되는 길을 물어 물어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달려 온 피붙이 동생 요셉이 아닌가? 그것도 어린 동생을 그들 사이에 두고 흥정을 하는 것이다. 요셉은 그 형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며 애걸복걸했으리라(42,21). 그러나 이미 형들의 완고한 마음을 꺾지를 못했다. 요셉은 두고두고 이 형들의 야만적이고 비정한 행동을 깊이깊이 새기고 또 새겼을 게다.

 

비단 요셉이 잊고픈 것은 그 못난 형들뿐이랴!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안주인 그 마나님은 두고두고 생각조차 하는 것이 아마도 겁이 났을 게다. 그녀는 남편이 없는 틈만 나면 요셉을 찾아서는,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나와 함께 자요!” 하고 말하면서 자기 침실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던가! 요셉은 그녀의 노골적인 성적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음흉한 표현으로 자신의 욕정을 단도 입적으로 요셉에게 건네며 꼬드겼다. 그녀의 이런 천하고 속된 표현은, 요셉을 마치 자신의 몸종으로 취급해 안하무인인 양 노골적이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녀의 그 안타까운 애걸을 단호히 거부했다.

 

심지어는 요셉이 옷을 내버려 둔 채 도망치는 것을 보고, 하인들을 불러 말하였다. “좀 보아라. 나를 희롱하라고 주인께서 저 히브리 녀석을 데려다 놓았구나. 저이가 함께 자려고 다가오기에 내가 이렇게 고함을 질렀지. 저자는 내가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것에, 자기 옷을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멀리 도망쳐 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그 옷을 하인들에게 들어 보이며 요셉을 음해하려는 물증으로 단정해 흔들어댄다.

 

이는 요셉의 옷을 증거물로 제시하면서 그가 강간하려 했기에 고함을 질렀다는 거짓말을 강조하는, 그야말로 자신의 파렴치한 행위를 숨기려는 눈에 드러나는 의도였다. 심지어는 그 집의 하인들까지 끌어넣어, 요셉을 주인께 단단히 일러바치자는 속셈도 있었다. 그녀의 이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요셉의 옷이 한몫을 하는 탓에 흡사 진실인 양 비친다. 그러나 그녀가 누명을 씌우려 요셉의 옷을 붙잡았지만, 그의 영혼마저 끝내 붙잡지는 못했다.

 

요셉은 옷을 버림으로써 죄짓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이를 분명히 기억하실 것이다. 끝내 일말의 양심을 저버리면서 착한 요셉을 목청 높여 고발하는 그녀의 교활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린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일러바쳤다. “당신이 데려다 놓은 히브리 저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다가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목청 높여 소리 질렀더니, 옷을 이렇게 버려두고 도망쳤답니다.”

 

요셉은 자신을 한낱 비천한 신분의 외국인 종으로 비하하면서, 온갖 희롱의 수모를 가한 포티파르의 아내를 그의 뇌리에서 영영 지우고 싶었을 게다. 아니 요셉에게는 그 흔한 꿈에서조차 나타날까 두려웠으리라. 더구나 요셉을 당신이 집안에 들인 탓인 만큼, 그 책임은 전적으로 당신이 져야 한다고 남편 포티파르를 연루시킨 그녀의 용서 못 할 고자질은 아예 상상조차 싫었다. 그리하여 그토록 남편마저 못살게 군 완강한 요구와 잔소리에 자기를 감옥살이로 내몬 포티파르의 그 안타까운 처신도 이제는 잊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자기보다 한참이나 이래인 경호대장이 아니던가! 그렇게 요셉은 다 잊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맏이를 므나쎄라 불렀다. 이제는 잊자면서.

 

그리고 연이어서 아스낫은 둘째를 낳았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내 고난의 땅에서 나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셨구나.” 하면서,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프라임이라 하였다. 이는 나를 번창하게 하셨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요셉은 고생하는 이집트에서 하느님께서 자식들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셨다는 생각에서 하느님을 기억하여 둘째의 이름을 에프라임이라 붙였다. 이는 자신을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기억하려는 뜻에서 지은 두 아들 이름이었다.

 

드디어 이집트 땅에 들었던 칠 년 대풍이 끝났다. 그러자 이제부터 요셉이 말한 그대로 칠 년 기근이 시작되었다. [계속]

 

[참조] : 이어서 '칠 년 동안의 흉년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므나쎄,에프라임,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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