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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5 조회수1,365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과 어제 복음이 같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시각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약 한 달 전에 제가 전주교구에 계신 자매님께 약속을 드린 게 있습니다. 그분이 부활 때 무언인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잠시 인생의 소회를 문자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냥 제게 도움이 되라는 뜻에서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저는 그 내용을 듣고 너무나도 놀라고 가슴 아팠습니다. 저에게 암투병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저를 참 잘 아껴주신 자매님이라 어떻게 상태를 여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 기도를 간절히 열심히 해드리겠다는 말씀만 알려드렸습니다. 사실 상태가 궁금했지만 혹시나 그런 걸 말씀하시게 해서 마음에 괴로움을 안겨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차마 여쭤볼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분은 유섬이 도보순례 때 인연으로 만난 분입니다. 제가 549일기도를 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제 어머니를 위해 9일기도를 드린 것 외에 어느 누구도 9일기도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냥 기도를 해 드릴 분이 있으면 제 기도 중에 기억하는 그런 정도의 기도였습니다.

 

제가 어머니 선종이후에 처음으로 다시 9일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쉽다면 쉬울 수 있지만 사실 남을 위해 54일 동안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하다가 중간에 저에게 지금 생각지도 못한 십자가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래서 며칠 제가 몸살이 났습니다. 중간에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가 약속을 했고 또 빠진 걸 채우면 된다고 아는 신부님께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신부님 말씀대로 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그분을 위해 진정으로 제 정성이 하늘에 올라갈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여러 차례 이분에 대해 말씀을 드린 적이 있어서 내용은 대충 잘 아실 겁니다. 저는 이분을 형제로서 사랑합니다. 영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말입니다. 제보다 14살 연상이십니다. 제가 왜 사랑할까요? 그분이 먼저 형제를 사랑하는 맘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뭔가 위대한 사랑만이 대단한 사랑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에도 사랑이 묻어 있으면 그건 그냥 한마디하고 사라지는 말처럼 될 수가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때론 다정한 한마디의 말이 영혼을 감미롭게 해 주는 여운이 남는 말도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건 남녀 간의 이성적인 사랑에서만 느낄 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그렇습니다. 저는 순례 동안도 그분의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나중에 다른 자매님을 통해 알았지만 사실 암투병하시고 난 후에 순례를 참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제가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헤어진 이후에도 어떻게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대전에 사는 자매님 한 분과는 어쩌다가 한번 연락하지만 이분이 유일하게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이고 그 이후에도 전주에 제가 다른 도보순례 때문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분을 위해 그렇게 기도를 해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분의 따뜻한 맘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걸 다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끔 생각나는 분이였습니다. 그분이 남겨주신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그 여운이 제 영혼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실 남을 위해서 따뜻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말이 그냥 지나가는 빈말도 솔직히 있습니다. 근데 이분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걸 저는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맘이 진심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그 맘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기도를 해드리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줘야한다는 그런 계산적인 사랑도 있을 수가 있겠지만 저는 그런 계산적인 사랑을 떠나서 그냥 맹목적인 사랑, 그저 사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어떤 계산도 없는 그런 사랑이야말로 정말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중에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를 판단하실 때 그런 사랑도 참작을 하시겠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냥 진심으로 형제를 어떤 계산도 없이 마음으로 사랑한 그런 사랑을 기준으로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사랑을 했는가를 가늠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때 자신의 가슴도 아프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 겁니다. 형제끼리 이런 사랑을 나눈다면 그런 사랑을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제가 하느님이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런 사랑을 형제끼리 한다면 서로서로를 축복해주고 싶을 겁니다. 사람인 저도 이런 마음인데 하느님께서는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사랑이 한 사람으로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또 그렇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느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저희를 찜하신 것일 겁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며 지복직관의 복을 누리도록 말입니다.

 

베네딕토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회칙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일서 420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다.” 라는 말씀으로 사랑은 그 속성상,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도록 의지적으로 일치함으로써 우리가 되려고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랑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계속되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화되어 이웃 사랑을 멈출 수가 없기에, 사랑의 이중 계명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결국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백 마디 말로 하는 것보다 진정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는 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말보다 더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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