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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8 조회수1,880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보면 보호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진리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성령을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에 살면서 보호자라는 말을 언제 가장 많이 듣는지를 가만히 보면 병원에서 환자의 가족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외에도 말 그대로 보호하는 사람이나 이런 지위에 있는 지위를 통상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보호자가 필요한 것은 보호자가 없으면 그 사람의 위치는 위태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환자를 비유하면 환자에겐 보호자가 생명 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바로 우리의 신앙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바로 우리에겐 우리가 인식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성령의 보호 아래 있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지 못하고 세상에 끌려갔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힘의 강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성령의 힘으로 보호를 받겠지만 그 힘이 강하게 작용이 되는 사람과 약하게 작용이 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힘의 세기와 강도에 따라 하느님 편으로 기우느냐 세상으로 기우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힘의 강도는 어떻게 해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엔 그건 하느님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마치 자석의 성질과 같습니다. 자석이 다른 극과는 인력이 작용하여 서로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극은 다릅니다. 하지만 근본 성질은 자성이라는 성질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을 겁니다. 근본 성질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느님의 속성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은 하느님과 공통의 성질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극이 존재합니다. 바로 하느님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존재가 현재는 아닙니다. 그래서 서로 지금은 마치 자석의 극이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자석이 다른 극끼리 인력이 작용해 서로 끌어안고 붙는 힘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붙을 수가 있는 원리가 이런 원리랑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거룩한 존재와 거룩하지 않은 존재라는 성질이 다른 극이지만 근본 속성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사랑하는 사람 끼리는 배척하는 힘이 있을까요? 당기는 힘이 있을까요? 바로 당기고 싶은 힘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는 마치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환자는 보호자의 보호 아래 있지 않으면 불안하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힘에 끌려가야 하느님께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즉 인력이 작용하려면 자신이 바로 자석처럼 자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자성이 우리에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자신 속에 사랑이라는 힘의 강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그 힘의 강도에 비례해서 크면 큰 만큼 자성이 강하니 그만큼 자신 속에 하느님의 힘을 당겨서 그 힘만큼 성령의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로 적용한다면 성령 하느님의 보호는 단순히 그저 감나무에 있는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받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걸 받기 위해 자신이 각고의 노력을 할 때 그런 은총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은총은 거저 주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저 주어지는 건 아닐 겁니다. 그렇게 작용한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어지는 형국이 되면 누가 그 은총을 얻으려고 노력을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자생력은 없어지고 결국 생명력이 없어져 소멸할 존재로 되게 될 겁니다.

 

우리가 자생력을 얻기 위해서 끊임 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겁니다. 바로 비근한 예가 기도입니다. 그래서 끊임 없이 항구하게 기도하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정리를 한다면 보호자이신 성령 하느님을 우리가 모시는 길은 우리의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 성령 하느님의 힘의 걍약에 따라 성령 충만한 삶이 되느냐 아니냐가 바로 자신에게 무엇보다 달려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힘을 받는 게 희생과 사랑 또 자신이 가는 길에 있어서 생기는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얻게 되는 은총이 바로 우리를 보호 해주시는 성령 하느님이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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