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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21 조회수2,27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5월 21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 18,1-8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3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4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5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7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다.

그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8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다.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

복음 요한 16,16-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

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어린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도 다 푸는

이 어린 학생에서 선생님은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은

 도저히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냈지요. 즉,

1에서 100까지 숫자를

모두 더하면 얼마이냐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곧바로 5,050이라고 말합니다.

정답입니다.
이 아이가 바로 19세기 독일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디입니다. 가우디는

 어렸을 때 선생님께서 내신

문제를 받고서는 곧바로

하나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과 100을

더하면 101, 2와 99를

더해도 101, 3과 98을 더해도

101…. 이런 식이라면 101을

50번 반복하면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모두 더한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101×50=5,050의 식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1부터 차례대로 더해나간다면

실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패턴을

발견하면 실수할 수도

또 지루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힘들고,

 미사나 기도가 너무 지루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패턴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으면서

우리도 세상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하는

패턴입니다. 이 패턴에 대입해서

주님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기쁨 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하게 됩니다.

아직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나약한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기에 멈추지

 않으시고 다시 나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시지요. 수난과 부활을 동시에

 말씀하시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는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사랑을 알고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

주님께서는 주시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패턴을 몸에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자들은 지금 웃을 수

 있지만, 나중에 세상이 탄식할 때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패턴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세상에 기쁨을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근심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근심의

자리에 기쁨이 자리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명성은 사람들이

보는 당신의 모습이지만,

인격은 당신의 실제 모습이다.

(존 우드)

주님을 알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은?

 어떤 아이가 “신부님!

으악새라는 새도 있어요?

 이 새는 ‘으악, 으악’ 하고 우나요?”

라고 묻습니다. 흘러간 노래 중에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로

시작하는 ‘짝사랑’이라는

노래도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으악새를 ‘새’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억새풀을 가리킨다고 하지요.

 이런 오해는 꽤 있습니다.

청담대를 대학교 이름으로 알고,

몽고반점을 중국식당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답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인터넷에

 검색해서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잘못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한 번

 생각하면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톨릭에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교육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부족보다 주님을 알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승천을 묵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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