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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6.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5 조회수2,38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2티모 3,10-17

사랑하는 그대여,

10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처신,

목표와 믿음, 끈기와 사랑과

 인내를 따랐으며,

11 내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서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내가 어떠한 박해를 견디어 냈던가!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
12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13 그런데 악한 사람들과 협잡꾼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질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복음 마르 12,35-37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한 아이와 짝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 친구는 매우 지저분했고
 공부도 못했습니다.
 여기에 얼굴에는 거부감이
 들 정도의 큰 흉터가 있었지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억지로 짝을
 지어주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울면서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선생님은
 “이 친구와 짝이 될 사람?”이라며
지원자를 찾으셨습니다.
모두가 싫었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지요. 그때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짝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이 친구가 안타까웠고,
 내가 구해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좋은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지저분하고 냄새도 많이 났으며,
공부도 못하는 이 친구와 함께하기가
점점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다른 자리의
친구와 놀았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괴롭힌 것은 아니었지만,
무시했던 것입니다.
철이 들면서 이때의 생각을 하면
제 마음이 아픕니다.
당시 이 친구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겉모습만 보고서
나의 행동을 정당화했던 것입니다.
철없을 때의 일이 이렇게 40년이
 넘었음에도 후회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과 반대되는 모든 말과
행동은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율법 학자들은
소위 성경에 대해서는 ‘박사’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어떻게 태어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즉, 다윗의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앎은
인간의 앎일 뿐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앎을 주님께서는
지적하십니다.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지만,
다윗 스스로가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곧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신성으로는 다윗의 주님이 됩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주님을 육에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만 여길 뿐 다윗의
주님이신 하느님이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 못하고, 인성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일조를 하게 되지요.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다른 이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단죄는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

나의 영웅

미국의 영화 배우 매튜 맥커너히는

오스카상 수상 당시 10대 때부터

변하지 않은 자신의 영웅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월, 매주, 매월 그리고 매년 제 영웅은

항상 저로부터 십 년이나 멀어져 있습니다. 아

마 전 절대로 그 영웅이 되지 못할 겁니다.

갖지도 못하겠죠.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니까요.”
그가 말하는 자신의 영웅은 10년 뒤의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미래의 다른 삶을

지향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영웅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특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영웅을

 생각하면서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 거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희망을 간직하는 삶,

어렵고 힘들다고만 외치는 삶이 아니라

희망이 있기에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십니다.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서도 한 줄기 빛으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 주님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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