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6.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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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6-06 | 조회수2,28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20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제1독서 2티모 4,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복음 마르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창던지기 종목에서 영국 선수 스티브 베클리는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리고 4년 뒤의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했고, 그 역시 그 어떤 때보다도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을 6개월 앞두고 발목 부상을 입었습니다. 6주 동안 목발을 짚어야 했고 훈련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6주 동안 목발을 벽에 기대어놓고 의자에 앉아 창던지기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창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고, 손가락으로 꽉 쥔 서늘한 금속 손잡이의 감촉을 느꼈습니다. 완벽한 창던지기 자세를 취했고, 던진 창이 높이 아치형을 그리며 날아가는 순간에는 그의 근육도 긴장했습니다. 창이 저 멀리 날아가서 땅에 꽂히는 장면을 계속해서 상상했습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중요하다고 말하지요. 실제로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이 훈련으로 향상된 성적을 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스티브 베클리 선수가 ‘훈련을 할 수 없으니, 나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어.’ 라고 포기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을 때는 좌절하며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이 세상 안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처럼 자비의 빈손, 믿음의 빈손, 정결의 빈손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넣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겠지만, 주님께서는 지향을 보시기 때문에 그녀를 칭찬하십니다. 자신의 생활비를 모두 다 넣을 정도로 하느님을 사랑하시는 그녀의 지향을 보신 것입니다. 자캐오도 자기 재산의 절반으로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었고, 과부도 동전 두 닢으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부자가 베푼 많은 재산과 가난한 사람이 건넨 두 닢이 하늘 나라에서는 똑같은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재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보다 하느님께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랑의 지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내게 사랑의 지향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주님께 봉헌할 재물이 없다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음을 더 슬퍼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에머슨) 자기 자리를 지킴 어느 석상이 야외에 서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고 햇볕이 뜨거울 정도로 쨍쨍 내리쬘 때도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습니다. 석상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불만스럽지 않을까요? 세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석상도 기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자신을 보고서 감상을 하며 기쁨을 간직하는 사람을 볼 때가 아닐까요? 석상을 보면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모습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평불만으로 지금 자리를 떠나려고만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자리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특별한 것을 바라지 않고 자기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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