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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6 조회수2,303 추천수10 반대(0)

뉴욕에 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 도시봉쇄를 하지 않고 전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코로나19에 대응했습니다. 도시봉쇄를 하는 것은 사회적인 비용도 많이 들고 생활이 무척 불편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쉬운 마스크 착용을 미루고 도시봉쇄를 먼저 했습니다.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었으면서도 확산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고 합니다. 길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면 조금 이상합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가래로 막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이라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배울 수 있으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존심, 우월감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꺼려한다고도 합니다. 도시봉쇄조치는 마스크 착용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욱 제약하는 면이 있습니다. 마스크 착용은 심리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행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우리는 그것을 짊어지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파리의 세느강에서는 유람선을 타지만 한강의 유람선은 타려하지 않습니다. 에펠탑은 몇 시간씩 기다려서 올라가지만 남산타워는 올라가려하지 않습니다. 막상 다녀오면 한강이 참 넓고, 한강의 야경이 세느강에 뒤지지 않습니다. 막상 다녀오면 에펠탑에서 보는 전망보다 남산타워에서 보는 전망이 뒤지지 않습니다.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음에도 우리가 늘 보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발이 맞으면 발을 느끼지 못합니다. 신발이 작거나, 크면 발의 소중함을 느끼곤 합니다. 허리띠가 딱 맞으면 허리를 느끼지 못합니다. 허리띠가 작아서 숨 쉬기가 불편하면, 허리띠가 커서 바지가 헐렁하게 느껴지면 그제야 허리의 소중함을 느끼곤 합니다. 멕시코로 휴가 간 대기업의 간부가 민박집 주인에게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물었습니다. 어부인 민박집 주인은 4시간만 일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기업 간부가 말합니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면 좋다고 합니다. 어부가 묻습니다. 왜요? 간부가 대답합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고, 배를 더 살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부가 묻습니다. 그래서요? 간부가 대답합니다. 그러면 나처럼 이렇게 휴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어부가 대답합니다. 나는 이미 이렇게 매일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요? 행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많은 사람이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신앙의 신비라고 이야기합니다. 위대한 교부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작은 웅덩이를 파고 그곳에 바닷물을 담으려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도시봉쇄를 먼저 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동차의 구조와 엔진을 잘 몰라도 우리는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습니다. 운전은 자동차의 구조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운전은 교통신호를 지키고, 기술을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성서에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먼저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신앙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였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신앙 안에서 나누었습니다. 아기가 문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말을 하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부모님을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성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자이신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표징과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알려 주셨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이신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우리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지혜를 주시고, 굳셈을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온유와 친절과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목적은 우리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친교, 나눔, 사랑의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권한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셨습니다. 성령은 이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따뜻하게 감싸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삼위이신 하느님은 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가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 나눔, 사랑이 드러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입니다. 아빠의 권위는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행사되어야 합니다. 엄마의 사랑은 가족들을 위한 배려와 희생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아빠의 보살핌과 엄마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은 가정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본당 공동체에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 나눔,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불화와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일치의 삶을 사는 것,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신자생활의 이상입니다. 성호경을 할 때마다,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도록 다짐하고 그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과 성령과 함께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한 위격이 아니라 한 본체로 삼위일체 하느님이시옵니다. 주님의 계시로 저희가 믿는 주님의 영광은 아드님께도 성령께도 다름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위격으로는 각각이시요 본성으로는 한 분이시며 위엄으로는 같으심을 흠숭하오며 영원하신 참 하느님을 믿어 고백하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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