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버림과 하느님의 영복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8 조회수1,824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람에게 있는 여러 감각 중에서 시각의 기능은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과정을 수반하는 감각기관입니다. 보긴 보데 어디를 보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수행을 하는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수도복에 보면 머리를 둘러싸는 두건 같은 모자가 달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수도복에 그런 게 달려 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오늘 우연히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바로 그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한 곳만을 응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데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단순한 사실도 참 감동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자의 삶 자체가 오직 절대자 한 분을 바라보기 위한 삶이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한 수단과 그 상징적인 의미를 상기하기 위해서 수도복을 입는 측면이 있는데 수도복을 입음으로써 자신이 수도자임을 기억하는 매개체로써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인식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안전장치 같은 보조장치로써 모자를 통해 더 하느님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만을 추구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하느님을 생각하는 데에도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식적인 노력도 하느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일찍이 불가에서 유명한 법정 스님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무소유입니다.

 

오늘은 무소유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좀 더 많은 묵상을 해봤습니다. 인간의 본성 중에는 소유욕이 있습니다. 소유의 대상에는 생존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생존과는 무관한 소유물도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건은 어쩔 수가 없지만 사람은 생존에 불필요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좀 더 근원적인 의미로 들어가 생각을 해보면 이게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고 오히려 이것에 구속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물건을 소유하는 게 자신의 영혼에 불필요하다는 것을 오늘이 아니라 여러 번 그걸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심플하고 단출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소유욕에서 벗어나야만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것 같은 의미도 있을 것 같다는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최종적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라든지 무엇이든지 이 세상과 언젠가는 이별하는 삶을 사는 게 우리의 존재입니다. 종국에는 어느 하나라도 소유할 수가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에는 우리는 모든 존재와 이별하는 존재입니다.

 

이별하는 순간에는 소유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뭔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인간은 그곳에 마음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오래가는 것도 있다고 해도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중에는 영원히 그것과도 이별하는 존재임에도 인간은 그런 걸 소유하려는 마음을 가지려고 부질없는 일은 하기도 합니다. 이미 수도자들은 이런 걸 오래 전에 깨우쳤기에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쓰지 않기 위해서 또 하느님만을 바라보기 위해 애를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유하는 것보다 버리는 게 꼭 물건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그게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버리는 데에도 고민을 하는 게 인간의 삶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불필요한 시점에 버리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불필요한 정신, 예를 들어 탐욕, 미움, 시기, 질투도 어쩌면 이런 것도 소유의 개념입니다. 이것을 없애는 게 물건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굳이 이런 것은 없어도 되는데 이걸 가지고 또 소유한 다음 이것을 버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게 다 부질없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것도 덧없는 인간의 삶에 매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영원하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이런 유혹을 자신 스스로가 차단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단 중에 하나가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원을 추구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그런 게 다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영혼이 될 때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영복을 얻는 영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