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6.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9 조회수2,02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6월 9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열왕 17,7-16

그 무렵 엘리야가 숨어 지내던

7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9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그곳에 머물러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

10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복음 마태 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듣습니다.

그렇다면 ‘판단’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
2.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슨 일인가를 판정하는

인간의 사유 작용.
그렇다면 우리가 대체로 하는

판단은 잘못될 때가 많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등, 단순한

이분법적 생각으로 나누어

평가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판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바라보는

판단이 더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분법적 판단은 우리에게

피곤함을 많이 가져다줍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상황을 비난하고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습니다.

 불편함과 더불어 이를 듣고 따라야 하는

 피곤함을 간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판단이

주님께서 보여 주셨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의 죄를 용서해주시며

받아주셨고, 지금 역시 우리의 그 많고

큰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기회를 주면서

당신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금과 빛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금만을 즐겨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음식에 간을 맞추기 위해서 소금을

넣는 것이지, 소금 자체를 음식이라고

 내놓지 않습니다. 소금은 이렇게 함께

할 때 그 소중한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짠맛이 싫다고 소금이

자신의 짠맛을 포기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입니다.
빛 역시 빛 자체만으로는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둠으로 어떤

사물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사물을 환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빛입니다.
이처럼 함께하면서 그 소중함이

더욱더 드러나는 것이 소금과 빛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함께하는 데

필요한 판단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과 생각만이 옳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판단입니다.
때로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함과 피곤함을 가져다주는

판단이 된다면 절대로 안 됩니다.

모두를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판단이 될 때,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하느님을 따르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됩니다.
지금 나의 판단을 점검해 보십시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주님의 판단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래서 내 이웃과 함께하고 있나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얼마나 시도했든,

얼마나 실패했든, 괜찮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자.

(사뮈엘 베케트)

형제간의 우애

부모의 유산 문제가 형제간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이제까지 꽤 많이 보았습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모든 유산을

 가져갔다는 것,

간병을 하면서 그동안 부모의

재산을 모두 빼돌렸다는 것,

돌아가시기 전에는 연락 한번

 없다가 돌아가시자마자

 찾아와서 유산 분배를

이야기한다는 것 등등…. 너무

많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법적 문제를

결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화해하고 싶은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는 그런 화해를

하려 하지 않고 대화와 만남을

모두 거절해서 괴롭다고 말합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이런 방법을 제시합니다.
1. 기도하기: 화해를 거부하는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2. 내적으로 화해하기: 나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더는 미워하지 않으며,

 단지 관계 깨진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면서 상대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지만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3. 작은 표지 만들기: 화해의

작은 표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카드, 편지 등을 보내는 것이지요.

질책이 아닌 축복을 담아서 말입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이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 자신이

분명히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통해

하느님께서도 함께해 주실 것이며,

하느님의 뜻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사렙타의 과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