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14 조회수2,270 추천수14 반대(0)

세계적인 생태학자가 티베트에서 스님들과 회의를 했을 때입니다. 생태학자의 찻잔에 파리가 한 마리 빠졌습니다. 생태학자는 그런 경험이 전에도 있었기에 별일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이 생태학자의 얼굴을 보니 생태학자는 다시금 별일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손가락을 넣어서 찻잔에 빠진 파리를 꺼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파리도 별일 없습니다.’ 순간 생태학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은 생태학자로 자연과 환경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를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스님은 생태학자는 아니지만 찻잔 속에 빠진 파리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자연과 환경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인간의 몸에 들어왔습니다. 대공황 때보다 더 큰 경제위기가 왔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여행도 할 수 없고, 식당에도 갈 수 없고,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축구도, 야구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치료약을 개발하고, 백신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내 보내야하기 때문입니다. 유럽도, 미국도 이제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면서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별일 아닌 것이 아니지만 경제위기가 더 큰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낸 백신인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과 생물에게 큰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탐욕과 개발은 생태계에게는 커다란 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동안 인류가 걸어온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봇에게 포도원은 삶의 전부였습니다. 조상이 물려준 유산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포도원은 매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땅은 소유와 매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이었고,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어머니와 같았고, 삶의 전부였습니다. 아합 왕에게 나봇의 포도원은 그저 가지고 싶은 또 다른 포도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포도원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럼에도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에게 포도원은 조상이 물려준 유산도 아니었습니다. 포도원은 열매를 맺도록 일하는 삶의 터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또 하나 가지고 싶은 소유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별일 아닌 것처럼 나봇의 포도원을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빼앗았습니다. 아합 왕만 그랬을까요? 지난 세기 인류는 제국주의라는 부당한 힘으로 식민지를 만들었고, 약한 이들의 포도원을 강제로 수탈하였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WHO의 회의에 참석해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은 인류가 함께 개발하고, 백신은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공급되는 공공재로 만들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백신이 공급되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는 단절과 봉쇄만으로는 막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가 안전해질 때 비로소 나도 안전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와 연대, 협력과 나눔만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백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고 합니다. 자국민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백신을 소유하겠다고 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서 가격을 정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가난하고, 병든 이들은 백신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경제논리에 몰입하는 이들에게 찻잔 속의 파리는 별 일 아닐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문제가 있어서 사람이 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은 친교와 나눔 그리고 사랑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천상의 질서와 관계는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문제가 있었을까요?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하느님께서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창조하신 인간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스님이 파리를 사랑해서 찻잔 속의 파리를 꺼낸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직접 세상이라는 찻잔 속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생각으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의로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누가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십시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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