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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 송영진 신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19 조회수1,98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2020. 6. 17. )

(마태 6,1-6.16-18)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4).”

이 말씀에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위선적인 자선을 하는 것보다는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라는 뜻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신앙인이 자선을 베푸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다는 생각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상을 주실 것이고,

갚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 입장에서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보상을

기대하고 희망하기는 해도

그것을 요구할 권한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상은 언제나

항상 무상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은혜입니다.

만일에 미리 맡겨 놓은 자기의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하느님께 보상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을

자격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교만죄가 됩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자선을 베풀었다고 해도,

그래도 어떻든 그 자선 덕분에

도움을 받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동기는 위선이라고 해도

결과만 보면 선행이 아닌가?

선행이라면 칭찬받아야 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는 동기가 강조되고 있는데,

마태오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

동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결과만 강조되어 있습니다.>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를

남들이 판단하기는 어렵고,

실제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그 결과만 보고서 선행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이 위선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식별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도움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가? 아닌가?”입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면, 도움을 준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든지, 무엇인가를 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은혜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은 사람 쪽에서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만 입는 경우가 있는데,

위선자들이 위선적으로 자선을 베풀 때

그런 일이 실제로 생깁니다.

그 경우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까?

뭔가를 할수록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만 늘어난다면,

그것을 선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죄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5-6).”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척 하는

연기(演技)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속이려고 하는 짓이고,

사람들을 속이는 짓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죄가 되는 일입니다.

(미사 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으로 미사 참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귀찮아서,

또는 잔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서

억지로 참석하고, 미사 시간 내내

딴 생각만 했다면, 그것도 미사 참례를

하는 척 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주일을 지키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지킨 것은

지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여라.”

라는 말씀을, “세상일에(이웃의 사정에)

관심 갖지 말고 골방에서 기도만 하여라.”

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웃 사랑 없는 기도는 실천 없는 믿음

이고, ‘실천 없는 믿음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6).

따라서 이웃이 어떤 고통 속에

있는지 관심도 없이 골방에 숨어서

하는 기도는 기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태도도 역시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6-18).”

위선자들도 실제로 단식을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단식한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신심과 고행을

사람들에게 과시합니다.

그런 위선자들의 단식과 신심은

하느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라는 말씀은, 단식을 하면서도

안 하는 척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라는 뜻은 아니고,

자신의 신심과 고행을 사람들에게

과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위선자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을 좋아할까?

아마도 하느님의 평가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금방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늘 의식하는 생활입니다.

-송영진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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