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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아님 말구’ 정신으로 사랑하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20 조회수2,263 추천수8 반대(1) 신고

 

2020년 가해 연중 제12 주일



<아님 말구정신으로 사랑하라!>

 

 

복음: 마태오 10,26-33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누군가를 사랑하여 다가가 고백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고백이 거절당하는 두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만약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면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평생 후회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결혼을 일주일 남겨놓고 베트남전에 투입되게 된 군인이 있었습니다. 다녀와서 꼭 결혼하자고 약속을 하고 전투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발목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멀리서 그녀를 지켜볼 뿐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약혼녀는 자신의 약혼자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약혼녀의 짐을 덜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친구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내 약혼녀에게 가서 내가 죽었다고 전해주게. 그러나 끝까지 사랑했노라고 전해주게.”

친구는 약혼녀에게 그렇게 전해주었습니다. 약혼녀는 한없이 울었지만,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혼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또한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멀리서 혼인식을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와 혼인하는 사람은 발은 물론이요, 양손까지 절단된 퇴역군인이었던 것입니다.

 

두 다리가 절단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 다가가지 못한 이 군인은 얼마나 큰 후회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고 남도 모릅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줄지, 받아주지 않을지 분별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일단 표현하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거절당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또한 아님 말구!’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면 말고를 그렇게 쓴 것입니다.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정신이 없으면 사랑이 집착이 되거나, 혹은 그 두려움 때문에 혼자 고립된 삶을 살게 됩니다. 상대가 싫어하는데도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하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한마디 말도 못 붙이고 끝나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안 잡히는 물고기 때문에 물에 뛰어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의 그물에 들어오지 않는 물고기 때문에 상처받아야 할까요? 그러면 그물을 던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물을 던지는 이유는 그 그물에 잡히는 물고기들에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 때문에 상처받는다면 그물질은 포기해야 합니다.

 

복음 선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선포만큼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복음 선포를 하는데 우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두운 데서 들은 것을 밝은 데서 말하고,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육신은 멸망시켜도 영혼은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오히려 영혼까지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두려움 없이 증언한다면 당신도 하느님 앞에서 그 사람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 선포는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그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님 말구!’ 정신입니다.

 

 

선교왕들은 다 이런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무조건 찬미 예수!”라고 인사합니다. 불교 손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며 한 해에 서른 명 정도를 선교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길거리에서 띠를 두르고 무작정 다가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 한 해에도 수백 명 선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당에 나오고 싶어도 인도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주저하는 수많은 사람이 길거리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의 어떤 선교왕은 길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사람들을 고구마로 여긴다고 합니다. 고구마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찔러보는 것입니다. 안 익었으면 다음에 또 찔러본다는 마음으로 선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을 선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유튜브에도 가끔 악성 댓글을 달거나 싫어요를 누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싫어요를 누르는 사람을 찾아낼 수 없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왜 찾아내야 할까요? 모두가 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호수에 그물을 던졌는데 호수의 물고기들이 다 그 그물에 들어와 보십시오. 그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사실 좋아요’, ‘싫어요가 몇 개인지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에 휘둘리면 에너지를 빼앗기고 그러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합니다. 또한 악플을 다신 분이 있다면 읽어보고 챙길 것은 챙기고 그분을 더는 댓글을 달지 못하게 차단해버립니다. 다른 사람들까지 그것을 읽고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면 반드시 거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거절이 무서워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면 주님도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지붕 위에서 선포되어야 하고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아님 말구!’로 대처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다면 고백해야 하는 것처럼, 복음을 들었다면 선포합시다. 그래야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그 사람을 아신다고 증언해 주실 것입니다.

    

 

 

 

 

     https://youtu.be/fXu5GVYJ9D4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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