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6.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21 조회수2,18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제1독서 예레 20,10-13
예레미야가 말하였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제2독서 로마 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복음 마태 10,26-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26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과거는 힘이 셉니다.
그래서 과거의 휘둘림에
 한 대 맞으면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과거는 제자리에 있을 뿐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과거는 지금 현재에도 자신의
힘을 과시합니다. 어쩌면
미래에도 그 힘의 위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4월 15일. 제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언젠가는
이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솔직히 어머니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어떻게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됩니다.
분명 과거의 일회성 사건이지만,
지금도 그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쪽으로 그 힘을
발휘시키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글과 강의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언제나 제가
 쓴 글을 읽으셨고, 이를 위해
컴퓨터도 스스로 독학하셨습니다.
이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렇게 움직입니다.
또 자라고 변하고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주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따라 움직이며 자라고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즉,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심판 날에 우리 의지의
숨겨진 양심이 드러날 것이고,
지금은 흐리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에게 드러나게 된다고 하시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위협이나 모략 또는 그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죽일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영혼이 없으면 죽고,
영혼은 하느님이 없으면 죽는다.’라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육신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귀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주님을 안다고 말로만
고백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과거의 주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하느님 나라
초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운이란 우연하거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 오랜 노력과
의지의 결정체로 찾아오는 것.
(노희영)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이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던 독서실에서
적은 글입니다.
“독서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한다.
참 웃기는 일이다.
내가 제일 공부를 잘하는데,
내가 제일 열심히 공부한다.”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제일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 삶 안에서도 적용됩니다.
제일 열심히 운동해서 운동을 잘하고,
제일 열심히 노래해서 노래를 잘하고,
제일 열심히 춤을 춰서
춤을 잘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는 열심히 해도
안 된다고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분야일 수도 있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효율적인 요령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배움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또 가르치면서
앎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주님을 따르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