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21 조회수2,523 추천수14 반대(0)

작년 7월입니다. 함께 안식년을 지내던 동창신부와 함께 이태리 돌로미테 산악 트레킹을 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다른 일행들과 합류하였습니다. 10일 동안 함께 걸었습니다. 숙소는 산장이었습니다. 아침은 간단하게 산장에서 먹고 걸었습니다. 점심은 길 위에서 주로 라면 밥을 먹었습니다. 저녁은 산장에서 샤워를 하고, 일행들과 여유 있게 먹었습니다. 산행 중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선두에 서서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입니다. 늘 앞장서서 갔었고, 먼저 가니 쉬는 시간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길을 보고, 꽃을 보고, 하늘을 보고, 일행과 대화를 하면서 가는 사람입니다. 천천히 걷다보니 쉬는 시간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산장은 경유지이지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산행이 곧 목적지였습니다. 산장이 목적지인 사람은 빨리 걸어야 했고, 그러니 길은 경유지였습니다. 자세히 보지도 못했고, 여유도 없었습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 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산행의 책임자는 여유 있게 걸어도 산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배정하였습니다.

 

저는 신학생 때 산악반이었습니다. 먼저 가서 텐트를 쳐야했고, 저녁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산행은 여유가 없었고, 길은 그저 경유지였습니다. 돌로미테 산행에서도 저는 주로 앞장서서 갔습니다. 먼저 쉼터에 도착했고, 먼저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들꽃의 향기도 느끼고, 흘러가는 구름도 보고, 늦게 오는 분의 손을 잡아 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일행 중에는 지친 사람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서는 산 아래까지 내려가서 약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저도 신발의 밑창이 떨어져서 새롭게 등산화를 사야했는데 그 형제님은 기꺼이 저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 주었습니다. 산장에 자리가 부족해서 다른 산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때도 형제님은 기꺼이 자원하였습니다. 그 형제님에게 산장은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길이 목적지였고, 일행들과의 만남이 목적지였습니다. 걷다보면 산장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이웃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산장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산장을 향해서 앞만 보고 걷는 건 아닌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고, 정든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무능한 왕을 욕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성전이 없으니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한탄하였습니다. 시대를 탓하였고, 궁핍한 생활이 고단했습니다. 성전, 나라라는 목적지가 없으니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걸어가는 길은 좌절이고, 절망이고, 슬픔이고, 원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배의 길은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이방인의 신을 섬겼음을 후회했습니다. 비록 시련의 길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킨다면 그 길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몸은 유배의 길에서 고단하고, 불편하지만 마음은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원인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목적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과정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뉴욕에 있어도, 서울에 있어도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이나, 코로나 19 이후의 삶이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적지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적지는 나의 내면에 있다고 하십니다. 목적지는 원망하고, 비판하고, 좌절해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사람은 이미 목적지에 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지적할 때는 손가락 하나를 앞으로 내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손가락은 나 자신을 향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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