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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념 천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19 조회수1,725 추천수1 반대(0) 신고

방념 천사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

모든 것을 소유함"

-모든 시대에 모든 종교의-

현자들이 취하는 자세를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

어떤 피조물에도 마음이 묶이지 않은 사람,

다른 이들이 집착하는 것도 풀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정말 자유로운 사람이다.

방념放念은 중세 신비가들에게 중요한 말이었다.

특히 마이스터 엑크하르트

Meister Ekkehart는 거듭 새삼

방념에 관해 말한다.

자아에서 벗어나 하느님 안에

자신을 맡긴 사람,

그리하여 자신이 거룩한 땅에

속함을 앎으로 해서 마음 안에

고요를 얻은 사람은 태연하다.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방념은

인간이 자아로부터 해방됨을,

자신을 둘러싼 온갖 걱정과

근심을 비워버림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이 탄생되실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 곧 변조되지 않은

진짜 인격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방념은 내적 자유의 태도요

내적 고요의 자세다.

외부로부터 유입되어 나를 점유하고

소유하려고 위협하는 것과의 올바른 거리다.

단순히 성격적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방념도 습득할 수 있다.

방념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내가 우선 버려야 할 세계가 있게

마련이라고 신비가들은 말한다.

수도자들의 아버지 안토니오 성인은

삶에 대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먼저

온 재산을 포기했다.

재산과 성공과 남들의 인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종속적인 인간이 되고 마는 까닭이다.

그리고 종속은 인간의 품위를 거스른다.

흔히 우리는 복지에, 습관에

그리고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다.

버림으로써만 누릴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한 교부 말씀이 있다.

한 아이가 유리 항아리 속에 든

많은 호두를 보고 손을 넣어 되도록

많이 꺼내려 한다.

그러나 잔뜩 거머쥔 손이 항아리의

좁은 주둥이를 빠져나올 수는 없다.

결국 호두들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씩 꺼내 먹을 수 있다.

포기란 애를 써서 달성해야 하는

금욕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자유에 대한 동경에서 나오며,

우리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삶이 정말 풍요로워지리라는

예감에서 나온다.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가지는 생각이나

기대에 예속되어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의 인정이나 관심에 매이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아와 접촉할 수 있다.

방념은 나 자신에 대한 포기도 요구한다.

나 자신을 붙들어 두어서는 안된다.

나의 걱정도 근심도 침울한 감정도

모두 붙들어두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이 자기 상처에 매여 있다.

그것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한다.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 대한 고발로

그 상처들을 이용하지만 그럼으로써

결국 삶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상처도 병도 포기해야 한다.

그대 자신과 그대의 과거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기술로 그대를 이끌고갈,

그리고 그대가 그대 자신과 거리를 두고

물러나서 삶을 다른 관점에서,

즉 그대 자신의 건너편에서 관조할

능력을 줄 방념 천사가 필요하다.

그정도로 포기가 된 사람은 대중매체의

격앙된 보도에 태연히 반응할 수 있다.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황하거나

혼란에 빠지는 일이 없으며,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혹시 생활토대를 빼앗길세라

불안해 하는 일도 없다.

내외적인 모든 혼란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해주는 방념 천사의

도움으로 그런 자세를 지니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이 그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이상의 것이 있다.

성공에 대한 이미지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대 자신을 하느님 안에 놓아 주어라.

그러면 견고한 땅을 발견한 것이니,

그 땅 위에서 그대에게 몰려드는

모든 것을 태연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둘 줄 아는 사람은

나쁜 소식을 접할 때도 태연히 반응할 수 있다.

태연히 반응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

침착하게 받아들인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침착하다는 것은 내적 단련의 한 표현이다.

침착한 사람은 내적으로 동요하더라도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제 자세를 유지한다.

하지만 방념은 자제가 아니다.

자기 마음을 태연히 놓아두는 사람은

자제 자세를 유지할 필요도 없으니,

그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나쁜 소식도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

이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흘러가야하는 그대로 자기 자신과

자기 견해를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를 지금까지의 생활궤도에서

쉽사리 벗어나게 할 수 없다.

방념 천사가 그를 도와 그가 들은

모든 것을 천사의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해주고 있고,

바로 그것이 그에게 내적 자유와 폭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어떤 열띤 토론을 벌일 때면

자기 의견을 고집한다.

진실을 대변하는 것이 자기 양심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념 천사는 그런 토론에

임하고 있는 그대에게 진실은 말이나

논증의 정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걸 보여준다.

진실은 실상과 상응하는 조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절대로 진실하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자주 우리들 자신을

투사한 표현에 불과하다.

우리는 진실에 관해 표상들을 만들어낸다.

진실 자체가 파악될 수는 없다.

그것이 정의될 수는 없다.

가장 깊은 진실을 아는 사람은

태연히 토론에 들어간다.

우리가 진실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체념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인식은 으레 상대적이고

또 으레 갖가지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진실은 아마도 서로 논쟁중인 상대방들 한가운데

놓여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계산적이며 독선적인 사고에다 사물에 대한

방념과 신비에 대한 개방을 대립시켜 놓았다 :

"둘 다 끊임없는 진정한 사고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

방념 천사가 그대를 도와 그대가 자기 사고 안에서

너무 지능적이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아멘!

올해 만날 50 천사에서

-안셀름 그륀 지음-

서명옥 옮김/분도출판사 펴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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