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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국의 비유/가라지의 비유(마태13,24-43)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19 조회수1,84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7월19일/주일복음말씀묵상/ † 천국의 비유/가라지의 비유(마태13,24-43)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천국(하늘나라)의 아들들이 된다. 말씀으로 우리는 천국의 아들들이 된다. 1베드1,23은 우리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듭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떨어졌을 때 그것은 즉시 생명이 된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복음전파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에게 전파할 때, 당신이 이 말씀을 듣고 영접한다면, 당신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을 영접하게 된다.

 

24-25절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들을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자는 사람들은 종들이며, 그 당시의 사람들을 말하며,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 자신을 말한다. 잠자는 데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는 그것이 자연적인 경우이고, 또 다른 방면은 어떤 일로 너무 피곤하여 깨어 있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원수는 마귀이며(39절), 가라지는 사람들이다. 38절에서 밀이 사람을 상징하듯이, 가라지 역시 사람들을 상징한다. 악한 자의 아들들은 세상의 불신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 가운데 있던 혼잡한 무리와 같이 밀들과 함께 섞여 있던 사람들이다.

 

초기시대의 유다나 오늘날의 자유주의나 현대주의자들과 또한 수많은 이단들과 같이, 매시대마다 가라지들이 있었다. “덧뿌리고 갔다”는 것은 원수가 일을 하는 방법이다. 성경의 예언은 마지막 날에 큰 반역, 곧 진리로부터 떠나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사람들이 어떻게 진리로부터 떠나게 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상황은 사도 바오로와 요한과 베드로의 때에 이미 언급되고 있다. 역사에 따르면 가라지를 심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면서도 여전히 그들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26절에서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고 말한다. 그들의 행위가 드러나는 시기는 27절에 나타나 있는데 여기서 집주인의 종들이 벌써 놀라기 시작했다. 금 세기에 이단들이 일어나고 있었을 때 종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주인에게 고하였다.

 

종들은 누가 가라지를 심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가라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왜 그것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동일하다. 초기에는 아주 놀랍고 좋은 일이라는 소문들이 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어떤 악한 상황이 갑자기 발생하며 변질된다. 종들은 그 결과는 알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이 원수가 행한 것이라도 말했다. 가라지는 밀과 섞여있다. 사단의 역사를 보면, 매사에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방하는 것도 있다. 사단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뿐만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도 자신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2코린11,14-15). 사단은 할 수만 있다면 핍박하고, 그럴 수 없다면 그는 모방한다.

 

그러므로 핍박보다 위조품을 더 조심해야 한다. 사단이 위조할 수 없는 영적인 체험이란 하나도 없다. 사단은 심지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이나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연합과 같은 깊은 문제까지도 위조할 수 있다. 오늘날 사단은 거듭남과 구원과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까지도 위조한다.

 

오늘날 교회 환경을 보라. 신천지뿐만이 아니다. 희대의 이단들을 우리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진실로 구원받았을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모두가 나무와 짚과 풀이 되지 않기를 기도드린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는 체험은 거짓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구원받을 때는 심리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28-29절에서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아니다. 너희는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말씀하신다. 헬라어에서 ‘거두다, 모으다’라는 말은 ‘격렬한 힘으로 뿌리를 뽑다’라는 의미이다.

 

뿌리를 뽑는 것은 평화로운 방법이 아닌 격렬한 방법으로, 곧 잘라내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잠언2,21;신명29,28).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나 국교회는 이단을 믿는 사람들을 죽여 왔다. 이것이 가라지를 지금 모우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단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수없이 죽임을 당했으며, 심지어 좋은 밀인 신실한 믿는 이들 조차도 죽임을 당했다.

 

곧 모아진 많은 사람들은 가라지가 아니라 대다수가 밀이었다. 주님께서는 지금 모으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시 말하면, 좋은 밀은 가라지로 인하여 자생력과 더 큰 믿음이 생겨 더욱 건강해지고, 가라지는 점점 그들의 정체를 드러낼 것이며, 좋은 밀을 죽이고 그들의 악한 세력을 확장해 갈 것이다.

 

30절에서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고 말한다. “수확 때에” 이 구절이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된다. 수확 때는 이 세대의 끝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불렀다(갈라1,4). 이 세대의 완결은 대환난과 함께 막을 내린다.

 

이 세대가 끝날 때에 두 가지가 나타날 것인데, 하나는 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라지일 것이다. 추수는 이 세대의 완결이며 추수꾼은 천사이다. “단으로 묶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친분 관계에서 시작하여 종파로 파벌로 묶고 있다. 이 단으로 묶는 일이 이미 시작되었다.

 

교회 역사를 연구해 볼 때, 우리는 1820년 이래 지난 150년간 성경의 진리들이 하나씩 밝혀졌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믿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개인적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복음을 전하고, 사회적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복음을 전한다.

 

전천년설을 전하는 사람은 전천년설을 전하고 후천년설을 전하는 사람은 후천년설을 전하며, 무천년설을 전하는 사람은 무천년설을 전한다. 그러나 “예는 예이고, 아니오는 아니오.”이다. 이제 가라지가 단으로 묶여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가지 표적은 이 “단으로 묶는” 바로 이것이다.

 

추수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그것은 휴거를 가리킨다. 어떻게 우리는 미래의 추수가 휴거를 가리킴을 알 수 있는가? 왜냐하면 밀을 곡간으로 모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집은 그들의 밭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곡간은 집 가까이에 있었는데, 밀은 밭에서는 멀리 떨어졌지만, 집에서는 가까이 있던 곡간에 저장되었다.

 

그러므로 곡간은 공중이다. 밭은 세상이고, 집은 아버지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결실한 밀은 이 두 장소 어느 곳에도 저장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곡간은 공중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추수의 의미에 따른 해석이다. 휴거에 대하여는 요한묵시록 연구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알렐루야! 아멘!

 

 

*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을 참고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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