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7.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23 조회수2,12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예레 2,1-3.7-8.12-13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가서 예루살렘이 듣도록 외쳐라.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3 이스라엘은 주님께 성별된
그분 수확의 맏물이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주님의 말씀이다.
7 “내가 너희를 이 기름진
땅으로 데려와 그 열매와
좋은 것을 먹게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여기 들어와
내 땅을 더럽히고 나의 상속 재산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
8 사제들도 ‘주님께서 어디 계신가?’
하고 묻지 않았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몰라보고
목자들도 나에게 반역하였다.
 예언자들은 바알에 의지하여
예언하고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12 하늘아, 이를 두고 깜짝 놀라라.
소스라치고 몸서리쳐라.
주님의 말씀이다.
13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복음 마태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어느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의 저자는 키도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 저한테 뭘 먹으셨길래
이렇게 커진 건가요?
살도 잘 찌는 체질이고…….”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태어나길
 5.3kg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먹인 게 아니라
본인이 드신 거예요.”
아들은 자신의 뚱뚱한 모습이
어머니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 탓을
 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요.
태어날 때 5.3kg이면
우량아 중에서도 우량아입니다.
그러나 태어난 후에는 어머니가
억지로 먹인 것이 아닌 스스로
음식을 먹었기에 지금의
거대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책임 전가에
 아주 익숙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점은 다른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착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내 안에서 그 문제의
시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내 안에서 문제의
해결도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지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종종 강의하러 외부에 나가게 되면
저를 보지 않고 또 제 강의를
 듣지 않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더 노력했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안 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냥 포기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려면
관두라고 하지 뭐.
내가 손해인가? 자기 손해이지.’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르십니다.
보지도 또 듣지도 못해서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을 위해
쉽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물게 될 때, 삶 전체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주님의 사랑이 없는 곳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더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못된 버릇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탁월한 인물의 특성 중 하나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자기 자신,

즉 자신의 과거에 이룬 성취와

미래의 가능성 하고만 비교한다.

(브라이언 트레이시)

확률과 운명은 다르다

어렸을 때 들었던 소리 중에,

지금도 듣고 싶은 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성당 종소리’입니다.

삼종기도 시간에 맞춰서 울리던

종소리가 정말로 그립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고 말았지요.
전에 본당신부로 있었던

본당에도 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옆의 빌라에서 미사 소리도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데,

하루에 3번 종을 울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성당 문 앞에서

시위를 벌일 것입니다.
소리에 민감한 우리가 되어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이어폰으로

귀가 찢어질 정도로 듣지만,

남의 소리는 소음공해라며 항의합니다.

물론 생활에 피해를 주는

소음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소리는

많이 들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억은 장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냄새도 기억되고 소리도 기억됩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너무나도

차단하는 요즘입니다.

남의 소리라고 차단하고 싶지만,

이 소리가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까요?
성당 종소리가 듣고 싶네요.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은은한 그 종소리를....

(갑곶성지에 새롭게 설치된 피에타. 색을 바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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