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7.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25 조회수1,77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2코린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언젠가 신부님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후배 신부들에게
“잘 지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두가 “피곤해요.”
라는 답변입니다. 사실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잘 지내냐고
물으면 제1순위의 답변이
 ‘피곤하다’라고 하더군요.
지구란 땅덩어리에 사니
 피곤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지구는 허공에 뜬 채 매일 시속
108,000km로 공전하고 시속 1,660km로
자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지구에 몸담고
있어서 피곤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떤 신부에게 “잘 지내니?”
라고 묻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관심을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순간 다르게 보였습니다.
피곤하다는 말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질문에 긍정적인 답과
감사를 표현하는 이 신부가 제일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하는 뻔한 답보다 남들과 다른 긍정과
감사를 표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청을 올립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이 두 아들이 예수님의
양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이었습니다. 발 빠르게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문제는 세상의 관점과
주님의 관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양쪽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마시려는
 고통과 수난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나라는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닌,
서로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주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고통과 시련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고통과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는지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은 관심을 갖고
존중하는 일이다.
(에리히 프롬)
동물을 잘 키웁시다
어렸을 적, 동네에는
개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 개들의 종류는 모두가
여러 종이 섞여 있는 믹스견으로
흔히 ‘똥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컸습니다.
조그만 개는 거의 보기가 힘들었지요.
왜냐하면, 집을 지키는 용도로
개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 대문에는 늘 ‘개 조심’
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요즘에 큰 개라고 불리는 대형견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지에서 키우고 있는 네 마리의 개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라는 종으로
 대형견입니다. 25Kg 이상 나가는
큰 개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개를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시각 장애인 안내견으로
알려진 종이기 때문에 아는 분들은
귀여워해 주시지만, 집 안에서 키우는
푸들처럼 조그만 개만 보던 사람은 마치
공룡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하십니다.
큰 개는 배설물도 엄청 많고 먹는
사료의 양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개를 키운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 편리에만
맞추려다 보니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키우던 개를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기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작고 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이는 순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개들과 노는데, 나만 좋다고
쫓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나를 믿고 쫓아오는데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모습도
무조건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야고보의 순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