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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03 조회수1,97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8월 3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제1독서 예레 28,1-17

1 유다 임금 치드키야의 통치

초기 제사년 다섯째 달에,

기브온 출신의 예언자이며

아쭈르의 아들인 하난야가

주님의 집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말하였다.
2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3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 놓겠다.
4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
5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제들과, 주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6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였다.
“아무렴,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

주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말을

실현시키시어, 주님의 집 모든

기물과 모든 유배자를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오.

7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의 귀와

온 백성의 귀에 전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시오.
8 예로부터, 나와 당신에 앞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들에게 전쟁과 재앙과

흑사병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소.

9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가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드러나는 것이오.”
10 그러자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내어 부수었다.

11 그러고 나서 하난야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벗겨 이와 같이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길을 떠났다.

12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13 “가서 하난야에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14 참으로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모든 민족들의 목에

쇠 멍에를 씌우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복음 마태 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빠져들기시작하자,

“주님, 저를구해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신학교에서도 1년에 한 번씩

개교기념일에 맞춰 축제가 열립니다.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전체 학년이 준비하는

‘거리극’입니다. 거리를 걸어가다가

지정된 포스트에서 각 학년이

준비한 연극을 보는 것입니다.
저학년 때에는 우리 반에 나이 많은

 형님이 연출을 맡아서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저희 반에서

이 거리극을 온전히 맡아서

 연출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준비를 하면서

서로 의견도 많았고,

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가운데에 서서

이끌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서 이끌고 가는

 사람을 믿고 따라주는 사람 역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든

문제들도 거뜬하게 해결할 수 있으며,

더욱더 편하게 지금을 쉽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모두가 가운데에

서서 이끌고 가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이끄는 사람을 믿고 따라줄

사람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즉, 지금 내가 나서야 할 때는

용기 있게 해야 하며, 다른 이가

나설 때는 끝없는 응원과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나서야 할 때는 뒤로 빠져서

숨으려고만 하고, 다른 이가 나서면

잘 난 척만 한다면서 비판하는 데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십니다.

이 모습에 베드로는 감동하였나 봅니다.

 평생 어부로 살았던 베드로로서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깜짝 놀랄 일이고,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의 순간이었겠지요.

그래서 주님께 “저더러 물 위를 걸어

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주님의 허락을 통해서 그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에 두려워하면서 물에

빠지고 말지요. 주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따른다면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할 일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함께 하지도

않는다면, 불안과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세상이라는

바닷물 속에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요?

베드로처럼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고, 주님께서

내미는 손을 꽉 붙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운이라고 여기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는 운이 아니다.

기회를 붙잡고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워드 슐츠)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

아마 박수로 “짝짝짝~~ 짝짝~~”

이렇게 치면 우리나라 사람

특히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월드컵 응원 박수

소리인 것을 알 것입니다.

워낙 익숙한 리듬이기 때문에

곧바로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1990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은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게 한 뒤,

역할을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로

나눴습니다. 즉, 두드리는 자는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노래의

리듬을 두드리고, 듣는 자는

그 리듬을 듣고 맞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진

 노래이기에 쉽게 맞출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못해도 50% 이상은

맞추지 않겠냐고 예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성공률이 2.5%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은 알고 있으므로 상대도

자연스럽게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지식의 저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지식은

오해와 갈등이라는 저주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무언가를 잘 아는 상태가 되면

그것을 모르는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게 됩니다. “너 그것도 몰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고,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알레산드로 알로리의 '물 위를 걷는 베드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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