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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04 조회수2,07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예레 30,1-2.12-15.18-22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
12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너의 부상은 심하다.
13 네 종기에 치료 약이 없고
너에게 새살이 돋지 않으리라.
14 네 정부들은 모두
너를 잊어버리고
너를 찾지 않으리라.
 참으로 나는 네 원수를 시켜
너를 내리쳤으니 그것은
가혹한 훈계였다.
 너의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컸기 때문이다.
15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1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고 그의 거처를
가엾이 여겨 그 언덕에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제자리에 서게 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의 노래와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지 않고 내가
그들을 영예롭게 하리니 그들이
멸시당하지 않으리라.
20 그들의 자손들은 옛날처럼 되고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모두 내가 벌하리라.
21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복음 마태 15,1-2.10-14
1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2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10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2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바리사이들이
그 말씀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아십니까?”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선생님들이 참 많이

혼내셨던 것 같습니다.

늘 손에는 체벌할 몽둥이가

들려 있었고, 실제로 저 역시

많이 맞았습니다.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서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우리는 모두

그러려니 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자극되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큰 상처를 받았고

기가 죽어서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와 다른 친구가

상처받은 친구에게 “신경 쓰지 마.

 원래 저런 분인데 뭐~~~”라고

 이야기해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자퇴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는 이 친구가 유별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구는 한 마디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누구는 똑같은

말에 절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일반화를 시켜서 대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에 맞춰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권능에

경탄하여 찾아온 것이 아니라,

따지려는 마음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어깁니까?”

라고 묻지 않고,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라고 말한 것을 볼 때,

하느님 계명이 아니라 조상들의

관습을 어긴 것 때문에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뜻과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과 다르다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의 방식은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다름을 모두

인정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똑같은

모습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사랑을

주셨습니다. 많은 병자를 만나면서

보여주셨던 치유의 방식이

모두 다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면 우리 역시

나의 이웃에게 이렇게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모습에 집중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데 최선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오늘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예레 30,22 참조).
내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과도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돈을 잃는 것은

가벼운 손실이다.

 명예를 잃는 건

꽤 큰 손실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건

모든 걸 잃는 것이다.

(괴테)

필요하지 않는 것에 구속되지 않기.

법정 스님의 책 중에서

 ‘무소유’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스님께서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불필요한 것들을

갖게 되므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물건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물건이었고,

제게 꼭 필요할 것만 같았습니다.

 곧바로 주문을 넣었고,

며칠 뒤에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명을 통해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안 되었습니다.

전화로 문의했지만, 연

락이 되지 않습니다.

온종일 끙끙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니었습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 종일 시간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박스 안에 넣어

반송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에

구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물건만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오늘 기념하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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