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8월 17일[(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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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8-17 | 조회수1,40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8월 17일 월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에제키엘이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말씀입니다. 24,15-24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발에 신을 신어라.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내리셨습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예표가 되고,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화답송 신명 32,18-19.20.21(◎ 18ㄱ 참조) 하느님을 저버렸다. 바위를 저버리고, 너희를 세상에 내신 하느님을 잊어버렸다. 주님은 보시고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딸들을 물리치셨다.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감추고, 그들 끝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리라. 그들은 타락한 세대, 불충한 자식들이다.”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나를 질투하게 하고, 헛것들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다. 나도 내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분노하게 하리라.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복음 환호송 마태 5,3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복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6-22 예수님께 다가와,“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성체송 시편 130(129),7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오늘의 묵상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을 ‘부귀’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부귀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만, 부귀는 칼날이나 창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방종하게 굴면 사람의 뼈와 살을 베고 찌릅니다. 그런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역사책 『설원』에는 부귀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부’는 만족할 줄 아는 데 있고 ‘귀’는 물러남을 구하는 데 있다.” 만족하고 물러날 줄 아는 지혜만 있다면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 모두 예수님을 따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예수님께 질문을 드린 한 젊은이가 모든 계명을 잘 지켰음에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주님 말씀에 슬퍼하며 떠납니다. 사실 젊은이의 질문은 두 가지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가?’였고, 둘째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이 두 번째 질문을 스스로 되묻고 생각하도록 하십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것이 무엇일까?’로 말입니다. 되었다면, 그 많은 무엇이 우리를 차지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자유의 한계를 깨닫고, 우리의 욕망이 무엇인지 올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라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친절한 사랑은 오로지 내어 주고 섬기는 데서 오는 기쁨을 체험하게 한다.’(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94항 참조)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와 ‘귀’를 노래합니다.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불안해하지 마라.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그의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영화 속에 있으면서도 지각없는 사람은, 도살되는 짐승과 같다” (시편 49[48],17-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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