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8월 19일[(녹)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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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8-19 | 조회수1,53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8월 19일 수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강압으로 다스렸다. 흩어져야 했다.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의 말이다. 없어서 약탈당하고,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찾아보지도 않았다.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내놓으라 요구하고,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입에서 구해 내어, 되지 않게 하겠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1)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복음 환호송 히브 4,12 참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복음입니다. 20,1-16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장터에 서 있었다.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5 그들이 갔다.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나가 보니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품삯을 내주시오.’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생각하였는데,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시기하는 것이오?’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오늘의 묵상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실려 있습니다. 이 비유의 첫째 부분은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의 고용과 이에 해당하는 품삯에 대한 주인의 지시가, 둘째 부분은 온종일 일한 일꾼들의 품삯의 지급에 대한 불평 그리고 이에 대한 주인의 응답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불평의 주된 이유는 주인이 일이 끝날 무렵에 온 일꾼들과 온종일 일한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한 것입니다.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주인의 행동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일꾼이 자신의 품삯을 마음대로 정할 수도 없고,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의 체제는 철저한 신분 사회였고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게다가 권력과 부는 소수의 지배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차지였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포도밭 주인의 처사에 대하여 그 누구도 뭐라 할 상황은 아닌 듯 보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가 아니라 하늘 나라의 정의를 담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자면 비유 속 주인은 원래의 계약대로 품삯을 계산하였기에 결코 불의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오히려 이 정의를 깨뜨린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일어난 먼저 온 일꾼의 질투입니다. 주인의 정의, 곧 하늘 나라의 정의에는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자비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노동의 대가만이 아니라 구직을 걱정하며 장터에서 온종일 서 있던 이들의 정신적 고통의 대가도 고려하시는 자비입니다. 마지막 사람에게도 고용의 기회를 주어 생계를 보장하여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배려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구원받은 첫째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꼴찌가 되어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돌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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