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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19 조회수2,04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에제 34,1-11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5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6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8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9 그러니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10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복음 마태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신학생 내내 가지고 있었던 고민은
‘내가 과연 신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부가 될 자격이
제게는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신부가 되면 교회에
큰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신부님이 되고 싶었고
이렇게 매일 기도했습니다.
‘제가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세상에서 작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존재라도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당신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동시에 나름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저 자신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함 그 자체였지만
주님의 도움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지금의 제가 된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신학생 때에 가졌던 순수하고
겸손했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지면서 이상한 마음이 제 안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즉, 비판의 마음입니다.
다른 신부의 모습을 비판하고,
신자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또 교회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순수함과 겸손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모습만 가득히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받지 못한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하루 중 서로 다른
시간에 불린 일꾼들이 나오지요.
그런데 나중에 똑같은 임금을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이른 아침에
나왔던 일꾼들은 투덜거립니다.
맨 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분명히 공정하지 않은 처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맨 처음부터
일했던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이었다면
어떨까요? 이 공정하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 따질까요? 데모라도 해야 할까요?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고 대접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까요?
처음에 주인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일했던 일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주인으로부터 “일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떠했을까요?
감사했을 것이고, 더 열심히 일해서
 주인에게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에 가졌던 순수함과
겸손함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순수함과 겸손함은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어린이와 같이
되라고 강조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열정은 노력의 어머니다.
어떠한 일도 열정 없이
성취된 것은 없다.
(랄프 월드 매머슨)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걸어서
지순례를 하고 있었던
한 순례자가 길에서 마차를 만났습니다.
오랜 순례로 인해 다리가 너무 아팠던 그는
 마부에게 태워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마부는 흔쾌히 허락하면서 마차에 태웠습니다.
얼른 마차에 탄 나그네는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까지 멉니까?”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순례자는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겠다고
 생각하다가 피곤함에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마차의 덜컹거림에 놀라서 깬
순례자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30분 정도 온 것 같은데,
 예루살렘 근처에도
오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다 왔나요?”
“예루살렘은 여기서
 1시간 거리입니다.”
“아니! 아까 30분 거리라고 했고,
지금 30분 지났잖아요.”
그러자 마부가 말합니다.
“이 마차는 예루살렘 반대로
가는 마차입니다.”
우리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즉, 우리 삶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을
향해 가는 우리는 아닐까요?
주님의 뜻을 새기며 정확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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