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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팬데믹과 신앙의 위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22 조회수1,695 추천수2 반대(1) 신고

 

오늘 주일복음의 내용은 모든 분들이 워낙 잘 아시는 내용일 겁니다. 기본적으로 천주교 신자라면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묵상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좀 뻔한 일반적인 내용에서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묵상을 해봤습니다.

 

원래는 제가 10월 달에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고 수도자의 길을 갈지 판가름이 날 때까지 글쓰는 것을 포기하고 그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했습니다만 최근에 제가 복음 외에 많은 것을 수도원에 가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묵상을 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오늘 묵상한 내용을 한번 나눔을 가지는 것도 하느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평소 3개월은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데 지금 저에게 3개월은 마치 3년 같은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원장 신부님께서 왜 3개월이라는 시간을 주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사실 고백을 하자면 중간에 몇 번 갈등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의 문제도 있었고 또 본당 교우 중에서 격려나 응원을 해 주시는 것보다 염려스러운 마음에서 그런지 제가 도저히 그런 곳에서 견딜 수 없다고 기운 빠지는 소리를 들을 때는 솔직히 괜한 고민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갈등을 하기도 하긴 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려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개신교 목사가 지은 책이지만 기다림에 대한 은혜로운 책이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이제 한 달 조금 남았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잘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대로 살 예정입니다.

 

수도자의 길을 가도록 예비해 주셨다면 그 길을 가야할 테고 아니라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할 겁니다. 워낙 오랜만에 글을 올려서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얼마 전에 가톨릭 신문에서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한 미사 참례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충격이었지만 사실 저는 코로나 사태가 한국에서 발생하고 처음으로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저는 이 상황을 예측했습니다만 제가 몇몇 교우님에게 말씀드린 게 공교롭게도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사와 관련해서 지금 코로나가 미친 영향이 어떤지를 3일 가량 인터넷에서 심도 있게 자료를 검색해서 제 나름 분석한 게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도 보고 개신교 자체 내에서 분석한 자료도 검토를 하면서 제 나름 진지하게 묵상을 한 주제가 있습니다.

 

저 같은 나이롱 신자가 이런 걸 언급한다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회 경제적 손실이 아주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현상이 종교와 신앙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사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을 하기 어려운 사정이라 대책을 수립하고 그에 맞게 도출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강구를 하려고 해도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판단되어집니다.

 

크게 두 가지로 양분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새벽 네시쯤에 오랜만에 새벽미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마산교구 주교좌 성당에는 새벽미사가 있어서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습니다. 평상시에 보면 보통 다른 성당에서도 새벽미사는 630분에 있는데 예전부터 보면 마산교구주교좌 성당에는 새벽미사가 6시에 있었습니다. 성당에 도착하니 525분쯤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시간에는 거의 교우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는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예전에도 이 성당에 제가 초창기에 영세를 받고 나서는 수도원에 미사를 참례하기 전에는 여러 차례 미사를 참석한 경험이 있는 성당입니다. 그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2년 전에 추석 연휴 끝나고 유섬이 도보순례 때문에 전주 전동성당에서 새벽미사를 참례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감동 이후로 오늘 감동으로 다가 온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당 교우님이 아닌데 제가 한 분은 타 본당에서 자주 뵙는 자매님이 참례하신 걸 봤습니다. 또 한 분은 마산교구 성체조배회장님 내외분이 참례하셨습니다. 평화의 인사 때 인사를 하면서 참례하신 걸 알았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에 신부님께서 처음 보는 사람 같아서 어느 본당에서 왔냐고 하셔서 제 본당을 말씀을 드리니 신부님 말씀이 여기까지 왜 왔냐고 하시더군요. 이웃 본당도 아니고 네 개의 본당을 건너서 와야 되는 거라서 좀 의아해하셨습니다. 새벽미사가 오늘 하는 곳이 잘 없어서 모처럼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미사를 참례하면서 전체적으로 느낀 점입니다. 개신교에 비하면 이른 시간은 아닙니다. 개신교는 새벽기도를 5시에 합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예전에 가려면 최소 4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건 개신교 시절에 그랬고 지금은 천주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성당 입구에 들어가는데 그 시간에 미리 오셔서 눈을 감고 묵상기도를 하시는 분과 또 감실 앞에서 기도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지금과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또한 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회장님을 뵈면서도 아마 이분은 모래 월요일 새벽미사에 이분 본당에 가면 특별한 일 아니면 나오실 겁니다.

 

제가 최근에는 이분 본당에 개인 사정이 있어서 가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제 본당 옆 본당에 계시는 분입니다. 며칠 전 가톨릭 신문기사와 지금 교회(천주교)가 당면한 난관에 관한 자료를 보면서 오늘 오랜만에 미사 참례를 하며 올 때는 운동삼아서 도보로 왔습니다. 걸으면서 많은 걸 이전에 기사를 보면서 묵상한 것과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봤습니다.

 

묵상주제는 신앙과 환난이었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을 한 신앙고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저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다고 묵상을 했습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듣고 먼저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가 육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성부 하느님이신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을 달리 표현을 하자면 이런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인간의 육을 입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신성을 입고 있는 예수님의 신성을 보는 눈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하시면서 즉 다시 말해 하느님의 신성을 볼 수 있는 그런 영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마태오 복음에도 나오는 산상 설교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언급되어져 있습니다만 산상 설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행복과는 좀 다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 신부님들의 신앙칼럼을 보면서 교회의 앞날을 조심스럽게 걱정하시는 분이 많으십니다. 저도 그분들의 생각에 공감을 합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펜데믹이 유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어쩌면 미처 보지 못해서 간과하고 있는 면 때문에 신자들이 신앙과 믿음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 부분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 본질을 보지 못하는 면도 있을 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이롱 신자인 제가 생각했을 때 나름 진단을 한다면 우리 천주교 신앙을 제가 내면을 들여다봤을 때 보통 보면 영세를 받고 나서는 사후 관리가 잘 되지 않을뿐더러 미사와 기타 신심단체에서 활동이나 레지오 활동 등이 영성 생활의 주가 되는 현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게 빛을 발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신앙에 대한 재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 같은 무지몽매한 사람이 봤을 때도 교우님들이 신앙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면을 보더라도 물론 미사참례와 신부님의 강론과 신심단체 활동으로 신심을 키울 수가 있지만 기초적인 교리지식과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이론이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신앙이 흔들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고백처럼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자신의 입으로도 확고부동하게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 있어야지 외부의 어떤 환경적인 환난이 닥쳐도 끄떡 없는 신앙으로 우뚝 서리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정말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은혜로 그런 신앙고백을 할 수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셨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그렇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오늘 아는 신부님과 전화로 토론을 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몇 해 전에 구입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삼위일체론을 대여섯 시간을 봤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어렵지만 제 정도면 어느 정도는 소화를 시킬 수가 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신부님께서 저를 과대평가를 하셨습니다.

 

이 책을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지성적으로 인간의 머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도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수사학에도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철학에 기반을 두고 신학적으로 풀어낼 수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매일미사 영성체 후 묵상에 나오는 짤막한 내용이 성인의 위대한 걸작인 삼위일체론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매일미사 묵상 마지막 부분 다섯 줄 내용도 나옵니다. 오늘 삼위일체의 일부를 보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지식이 전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지성적으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자칫 자신만의 하느님으로 하느님상을 만들 우려가 있을 수가 있고 이게 또한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워낙 뛰어난 분이 저술한 책이라 아주 조금 이해를 했지만 그 내용을 제 같은 사람이 표현을 할 수가 없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결론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신앙의 근본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이론으로 정립이 되어 있어야만이 그나마 신앙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도 잘 헤쳐나갈 수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한 나이롱 신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어쩌면 복음에 나오듯이 지금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이 좁은문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길은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될 수가 있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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