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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3-20)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23 조회수1,81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8월23일/주일복음말씀묵상/ †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3-20)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마태16,13절은 “예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가리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의 아들(인자)을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주님은 왜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는가? 성경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서신서에서는 주님을 주로 주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구원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그분은 코르넬리우스(고넬료)의 집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불린다(사도10,1-43). 사람의 아들, 곧 인자라는 말은 그분은 배척받으셨으며, 또한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며, 그분이 사람이심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주님께서 배척받으신 후의 일들을 언급한다.

 

14절은 “가로되 더러는 세례자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백성들을 섬기던 사람이었으며, 엘리야는 종교에 가장 열심이었고, 예레미야는 가장 슬픔의 사람이었다. 아무도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요한은 주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선지자라고 말했다.

 

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셨다. 당신은 종교인 혹은 사회 사업자 혹은 철학자 혹은 개혁주의자라고 대답하겠는가? 심지어 당신이 그분을 선지자라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는가?

 

16-18절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칭찬하시면서, “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이제 베드로(Petros)이다. 내가 이 반석(Petra)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바”는 아들을 의미하며, “요나”는 비둘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요나는 성령의 계시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주님을 관찰하고 그분에 관해서 토론하는 것은 그들에게 하느님의 계시가 없으므로 부정확한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들의 견해를 따라 말했으므로 주님께서는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주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그때가 바로 그가 거듭난 때였다(1요한5,1; 4,15).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느님의 소망 혹은 계획을 이루실 분임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당신은 하느님의 소망과 계획을 이루실 유일한 분이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주님의 역사와 관련된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주님의 인격과 그분의 본체의 영광과 관련된다. 주님은 삼중의 영광을 가지고 계신다. 베드로의 시인은 두 가지 일을 상징한다. 하나는 주님의 역사와 인격을, 또 하나는 그 자신의 거듭남이다.

 

시몬은 베드로의 옛 이름이었다. 바요나는 성령의 아들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그가 성령으로부터 출생했음을 가리킨다. 우리가 만일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복 있는 자가 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고백은 우리가 성령의 계시를 받았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이나 다만 설교를 신뢰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갈라1,16). 하느님은 우리에게 네 가지의 위대한 계시를 주셨다. 첫째는 하늘과 태양과 달과 별들과 같은 자연에 대한 계시, 둘째는 성경, 셋째는 가장 중요한 것, 성령, 넷째는 예수이다. 이 중에서 성령의 계시가 가장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이제 베드로(Petros)이다. 내가 이 반석(Petra)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 “또 내가 이르노니” 이미 한 가지를 말했고, 이제 주님은 두 번째 것을 말씀하시려고 하신다.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그 당시에 교회 건축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안다.

 

베드로(Petros)라는 말은 ‘작은 돌’을 의미한다. 여기서 그리스어 반석은 페트라(Petra)로서 큰 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다른 종류의 돌이다. 교회는 페트로스(Petros) 위에 건축될 수 없으며 아무도 집을 작은 돌 위에 짓지 않는다. 베드로는 단지 하나의 작은 돌에 불과했으며 반석(페트라, Petra)은 주 예수님이시다(1베드2,7-8).

 

베드로에게 주 예수님을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다. 베드로는 주님을 시인했으며 그러므로 그는 작은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을 시인하는 사람은 역시 작은 돌, 곧 하느님의 거처이자 교회인 신령한 집을 건축할 수 있는 산돌이 될 수 있다(1베드2,5). 이 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주 그리스도이시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웠으므로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며, 그리고 베드로의 시신 위에 로마 가톨릭 성전을 세웠다고 가르친다. 또한 베드로는 인간적으로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단단한 반석이 될 수 있었으며, 교회는 이 베드로의 신앙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졌음을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해석한다.

 

그러나 만일 그 반석이 베드로라면 그가 주님께서 잡히신 날 새벽 대제사장(수석 사제)의 시녀 앞에서 두려워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을 때 커다란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베드로에게 이 계시가 없었다면 교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기초이다. 온 교회가 다만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고 하느님의 아들임을 아는 것이 바로 반석(페트라)이다.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반석인 계시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베드로의 고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믿은 이들의 신앙고백을 반석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 위에 빛을 비추시고 보여주셨기 때문에 이것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 눈이 하느님에 의해 열려져야 비로소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에클레시아)는 부르심을 받은 회중이다. 이 회중은 부르심을 받았으며 거룩하게 분별되었는데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써 세상과 죄와 옛 사람과 기질 등에서부터 분별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은 거룩하며 모든 구원받은 사람은 성결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의 피로써 정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브9,13-14절은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느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한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the gates of Hades)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 “음부의 문들” 문은 출구와 입구가 있다. 음부는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곧 죽음은 믿는 이들이나 교회를 붙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썩지 않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2티모1,10절은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주님의 신성한 생명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입으신 땅위에서의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날 주님이 그분의 생명을 두신 장소이다. 그 썩지 않는 생명이 음부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주님은 그 생명이 자유롭게 음부를 드나들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권위가 있으시다. 주님은 믿는 이들 속에 음부가 붙잡을 수 없는 생명을 넣으셨다. 이것은 그분이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음부에 의해 붙잡히지 않는 신성한 생명을 소유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생명은 그들이 죽은 후에 음부에 의해 붙잡힌다. 부활이란 사망에 의해 붙잡힐 수 없는 생명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분을 믿을 때 우리의 영이 열렸고, 그 영 안에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오늘날 몸 가운데 살 때에도 사실이다. 환경은 시험과 핍박과 공격과 살인과 거짓들과 같이 통탄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주변에 두꺼운 벽이 둘러싸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억제될 수 없는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환경도 우리를 제압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19절에서 주님은 “나는 너에게 천국(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거의 잘못 해석되곤 한다. 천국의 열쇠가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어졌는가? “맨다”는(묶는다는 것)것은 죄 사함을 가리키는가? 18절의 음부의 문은 19절의 천국(하늘나라)의 문과 대비된다. 18절의 주제는 교회인 반면에, 19절의 주제는 천국이다. 여기서는 교회의 열쇠라고 말하지 않고 천국의 열쇠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베드로는 정말로 교황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는 주님에 의해 건축되며, 거듭나고 새 생명을 얻고, 성령에 의해서 일으킴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혈육에 의해 계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더욱이 그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주어졌다.

 

우리에게 열쇠가 있을 때에만 우리는 묶을 권세(열지 않음)와 풀 권세(열 권세)를 가지게 된다. 마태18,18절은 동일한 약속을 준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땅에서 묶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이미 묶인 것이며,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이미 풀린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복수이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이 열쇠를 소유한다. 베드로의 열쇠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는 것이었으므로, 우리의 열쇠도 동일하다. 최초로 거듭나서 주님을 시인한 최초의 사람으로서 베드로는 이 열쇠를 처음으로 받아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줄 자격이 있었다.

 

20절은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은 반석(페트라)이며 교회의 기초이다. 온 성경에는 두 노선이 있다. 교회와 천국(하늘나라)은 비록 분별할 수는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이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늘나라의 비밀에 속한 것이다(에페5,32).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신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언급되어져야 하지만 그리스도이신 주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유대인들과 같은 무리의 사람들에게는 언급되어져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아들은 영원하지만, 반면에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계획의 성취를 위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것을 배척한 유대인들에게 말한 필요가 없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마태12,24절에 기록된 대로 성령을 훼방한 때로부터 주님에 의해 거절되었음을 증명한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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