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25 조회수2,01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제1독서 2테살 2,1-3ㄱ.14-17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3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14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복음 마태 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요즘이야 반려견 관리에

더 철저해서 목줄을 반드시

채워 산책해야 합니다.

만약 목줄을 하지 않고

풀어 놨다가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반려견의 주인이 책임을 져야 하지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거의

개를 풀어서 키웠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이 정말로 많았습니다.
한 번은 학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제게 앞에 있는 개는

너무 크게만 보였지요. 그래서 개를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면서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개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마침 지나가시던 어떤 아저씨가

나서서 개를 쫓아내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개 신경을 건드려서 물린 거야.

가만히 있었으면, 또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다.

다행히 크게 물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얼른 집에 가라. 괜찮아.”
유혹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어렸을

때의 이 일이 생각났습니다.

유혹을 대하는 방법과 돌아다니는

개를 대하는 방법이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유혹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유혹이

무섭다고 또 두렵다고 유혹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혹은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유혹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습니다. 그 위선이 바로

불행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유혹 그 자체만을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끝이 없는 힘든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고 하면서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도

‘사랑’ 때문이지요.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지켜야 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완전히

 빠져 있다 보니,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율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전혀 없이 율법을 해석하면서

 사람들이 진리를 바라볼 수 없도록,

그래서 하늘 나라의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교만함은 유혹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이웃에 기준을 두는 사랑의 말과

행동은 함께 살아가는 기쁨의 삶을

우리에게 줍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자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놀라는 것이 인생이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겸손의 삶

라틴어에서 겸손을 뜻하는 단어

Humilitas는 흙, 먼지를 뜻하는

Humus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겸손이란 말은 흙에서 난

인간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할 때, 교만과 허영심

 등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겸손은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생겨난다.”

라고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부족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겸손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를 깨닫지 못해서 하느님과

나의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

우리 안에는 교만이 자리 잡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이며

죄인임을 인식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내게 몇 가지

불능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1) 청각불능. 남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집착합니다.
2) 시각불능. 남의 결점과

잘못만 눈에 들어옵니다.
3) 언어불능. 언어폭력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과 당시 종교지도자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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