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26 조회수1,91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2테살 3,6-10.16-18
6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17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이것이 내 모든
 편지의 표지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편지를 씁니다.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복음 마태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많은 커플이 자신과 정반대의
 타입에 반하고 끌려서 연애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바로 그 다름
 때문에 괴로움을 맛볼 가능성이
거의 99%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혼 사유의 대부분은
성격 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신
어떤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이 자매님은 지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책이 싫었고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적이고
책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영원한 반쪽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에 감사하며
결혼했지만, 함께 살아보니
 지적이고 책 좋아하는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것만 같고,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고집 센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점 때문에 결혼했지만,
 그 다른 점 때문에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사실 사랑은 다른 점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같은 점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요?
같은 점을 찾아가면서 다른 점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점만 찾았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그 다른 점만 찾다 보니 정작
봐야 할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대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주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특히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주님과 다른 점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물론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열심히 함’으로는 그들을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기도했고,
툭하면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오랫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남들보다도 더 많은
봉헌을 하는 것도 그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율법의 세부조항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열심함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정작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입장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고, 예수님의 사랑에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이런 경고를 받고서도
 전혀 자신의 행실을 고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하나를 이룰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점을
찾고 비판하고 단죄하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이 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깨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은희경)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교회가 문턱이 높으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접근불허의
금역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박정하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에누리
모르는 무자비라고 여긴다.
교회가 앵무새처럼 정의만 외쳐대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선자 꼰대라고 치부한다.
믿는 이가 속절없이 착하면,
 사람들은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르네”
하고 경탄한다.
믿는 이가 먹구름
날씨에도 노상 해맑으면,
사람들은 “뭔가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는 모양이야” 한다.
믿는 이가 원수 같은 존재를
조건 없이 용서하면,
사람들은 거룩한 두려움에
“나도 한 번 믿어볼까?”
 마음이 흔들린다.
고 차동엽 신부님의
유고시집에 있는 글입니다.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새로 이사와도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아서,
구역장님께 인사라도 하려고
전화번호를 사무실에 물어서
걸었더니 잘못된 번호였답니다.
교무금 책정에 관해 물으니,
 사무장님은 자유롭게 내라면서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교무금은 공납금으로
교구로 들어가고,
 건축금은 전액 본당 수입이니까
교무금 대신 건축금으로 내세요.”
이렇게 관심도 없고,
대신 꼼수만 피우는 교회 같아서
 나가기 싫다고 하시네요.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주님께서 어떤 모습을 더 좋아하실지를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무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