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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라에서 쓴 물을 단 물로[1] / 광야에서의 이동[2] / 탈출기[4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27 조회수1,58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마라에서 쓴 물을 단 물로

 

모세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에서 떠나게 하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나아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광야의 길이 시작된다. 수르 광야는 이집트와 맞닿는 쪽, 시나이 반도의 제일 왼쪽 광야 일대를 가리키는 곳이다.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 그들은 물을 찾지 못하였다.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마라는 쓰다를 뜻한다.

 

그래서 그들은 쓴맛이 강한 그 물을 그냥 그대로는 아예 식수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곧 마라의 물은 생명의 물이 아니라 오염된 물, 죽음의 물이었다. 광야에서 사흘 길을 달려온 탓에,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낙담하고 절망한다. 그들이 겪는 목마름은 어쩌면 생존의 문제였다. 하느님을 믿고 모세를 따라 이 광야로 훌훌 나왔는데, 막상 광야에 도달하고 보니 목이 타들어 가는데도 마실 물이라고 어디에도 없었다.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이 지경이니 백성이 지도자 모세에게 불평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 부르짖음이다. 이 외침은 단지 그들 자신의 문제였지, 하느님과 모세에게 반역하는 행위가 아니기에 죄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세는 이 긴박한 문제를 모르는 채 남의 일인 양 외면할 수가 없었다.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 보호를 해야 하기에. 그래서 그는 백성의 정당한 요구를 해결해 줄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카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듯, 마라의 쓴물이 단물의 식수가 되었다. 카나의 포도주가 예수님 작품이라면, 마라의 단물은 하느님의 기적이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투덜거리는 백성을 처벌하기는커녕, 그 불평을 충족해 주신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 중에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돌보시면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마실 물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서는 곧이어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당신 백성을 시험하셨다. 그분께서 마라에서 어떤 규정과 법규를 주셨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당신 뜻에 따라 그저 순종하듯 따르기만 하면, 쓴물을 식수로 만들어 주시듯 불평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해 주시려는 뜻일 게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면서,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결단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아무튼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올바른 삶을 살면, 마라의 단물처럼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을 언제 어디서나 얻을 수 있으며, 이집트인에 가한 그 어떤 질병이나 재앙보다 치명적인 것일지라도 끝내 보호해 주시겠단다. 이처럼 당신께서는 우리를 낫게 해 주시는 분이시라나. 그러기에 하느님께 치유를 받으려면, 그분 말씀에 순종해야만 한다. 병의 치유는 몸의 아픔만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치유는 영육이 온전히 죄의 사슬에서 죄다 구원과 해방을 가져오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종종 치유의 하느님으로 불러야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엘림에 다다랐다. 엘림은 숫양들의라는 뜻이다. 그곳에는 샘이 열두 개, 야자나무가 일흔 그루 있었다. 그들은 그곳 물가에 진을 쳤다. 샘이 열두 개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충분히 쓸 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완전한 숫자인 일흔 그루 야자나무가 있다는 것은, 그곳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많은 나무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마라와 엘림은 참 대조적이다. 마라에는 먹을 수 없는 쓴 물이 나오는 샘이 하나뿐이었지만, 엘림에는 식수용 단물이 나오는 샘이 무려 열두 개나 있었다. 마라에서의 쓴맛이 엘림에서는 단맛이 난다. 야자나무 등 맛있는 과일이 풍성하다. 사흘거리에 지친 몸을 마라에서는 달랠 길 없었으나 엘림에서는 원기를 회복해 기운이 솟구친다. 목마른 이를 위한 샘들이 있고 승리자들에게 주어지는 야자나무가 널려있다.

 

서둘러 이집트를 빠져나온 그들인지라 양식을 충분히 장만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와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 온 공동체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계속]

 

[참조] : 이어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마라,수르 광야,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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