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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0년 8월 28일 금요일[(백)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28 조회수1,47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백)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354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

(오늘의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모니카 성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가운데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끊임없는

 기도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으로 회개하고 입교하였다.

391년에 사제가 된 그는 5년 뒤 히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이단을 물리치며 교회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치는 가운데 참회의 자서전

「고백록」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430년에 선종한 그는 중세 초기부터

‘교회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제1독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7-25
형제 여러분,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3(32),1-2.4-5.10-11

(◎ 5ㄴ 참조)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주님은 민족들의 의지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흩으신다.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복음 환호송

루카 21,3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영성체송

마태 23,10.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 스승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오늘의 묵상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대비는

예수님의 여러 비유에 나타나는

전형적 형식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 그렇고(마태 7,24-27 참조)

자신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으던  

부자가 어리석은 사람의 예였으며

(루카 12,16-21 참조)

영리하여 칭찬받는 약은 집사는

반대로 슬기로운 사람의

예였습니다(루카 16,1-8 참조).
오늘의 복음인 ‘열 처녀의 비유’도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대비가

담겨 있습니다. 처녀 열 명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 다섯 명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준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슬기로운 처녀 다섯 명은 등과

함께 기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오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처녀들은 졸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외침이 들립니다.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지만 미리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은

뒤늦게 기름을 사러 가고,

이미 신랑은 도착하고 맙니다.

결국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문이 닫혀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비유 속 인물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신랑은 세상의 심판자로 오시는

예수님이시고, 신랑의 도착이

지체되는 것은 ‘그 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종말의 지연입니다.

 열 처녀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를 뜻하고, 기름은

마땅히 해야 할 선행이며,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한

거부는 심판을 뜻합니다.
따라서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대비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에게

깨어 준비할 것을 경고하시고,

일상의 수고로움에 대한 위로와

혼인 잔치에 들어갈 구원의 약속을

주십니다. 마땅히 깨어 준비하는

수고로움은 우리의 슬기로움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에

기울이고 들은 대로 실행하는 것이

믿는 이의 슬기로움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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