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32 - 카오산에서 청춘을 돌아보다 (방콕/태국)
작성자양상윤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30 조회수1,870 추천수0 반대(0) 신고

 

카오산에서 청춘을 돌아보다

 

카오산은 한국말로 산山 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자칫 산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태국 방콕에 있는 거리이름으로 

배낭여행의 성지로 여겨질 만큼 전세계 젊은 배낭 여행자들이 열광하는 곳이다,

물론 사람들의 취향이 가지각색이라 분명히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젊음의 문화가 있는 곳이라는 것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내가 그런 카오산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우리나라에 '배낭 여행'이라는 것이 막 알려지기 시작 하던 대학 때이다.

아무리 배낭 여행이라지만 그 당시 대학생이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런 만큼 환상도 컸다.

그러다 내가 카오산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삼십 대 후반 때쯤으로

젊지도 않으면서 그곳에 숙소를 마련한 것은 카오산의 명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젊은 날 내가 가졌던 카오산에 대한 환상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내 환상 속의 카오산은 홍콩 르와르영화에 나오는 어느 뒷골목 같은 다소 낡고 어둡고 지저분한 분위기였는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내 환상속의 카오산은 실제의 카오산보다 

인도 뉴델리의 빠하르간지가 더 비슷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랬다.

 

 

카오산을 찾아 갈때 이정표 역활을 하는 '민주 기념탑'



 

 

 

카오산 풍경

 

 

카오산은 내 환상과는 달리 많이 밝고 깨끗했다.

보통은 가지고 있던 환상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현실과 차이가 있을 때 다소 실망을 하게 되지만 카오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분위기에 약한 사람이다전에는 몰랐는데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쇼핑을 좋아하지도, 색다른 음식을 즐기는 편도 아니면서

스톱오버라는 기회를 일부러 만들면서까지 한번 더 홍콩에 갔었던 이유는

큰 도로가의 최 첨단 빌딩과 뒷골목의 낡고 허름한 풍경이 공존하는 홍콩의 독특한 분위기에 끌렸기 때문이고

화장실이 많이 불편해서 나 말고 아무도 없었던 

인도 마날리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근 일주일간을 지낸 단 하나의 이유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근사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알았다, 내가 분위기에 약하다는 것을.

 

내가 느낀 카오산의 분위기는  “젊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곳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젊었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당연히 그랬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싫지 않았던 거다.

젊음은 아름답다,

탱탱한 피부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보다 젊음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에 아름답다.

젊은 사람에게 나이든 사람 같다라는 말은 때론 부정적인 의미일수도 있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젊은이 같다 ('어리다'가 아니라)라는 말은 늘 긍정적인 의미일 정도로 젊음란 그만큼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속에도 나름 데로 갈등이 있고 고뇌가 있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런 것들이 밝음, 생기등과 함께 젊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런 것 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다가오는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기다려지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

젊었을 때 보다는 기다려 지지 않는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많은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만큼 변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며 

또 그 변화라는 것도 대부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리라.

다른 한가지를 더 말하자면 나이 들면 용서받을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는 거다.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은 경험부족이라는 이유로 용서가 쉽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용서받기가 힘들다.

똑 같이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해도 젊은 사람이 하면

방황하는 청춘쯤으로 용서가 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하면 “추한 술주정이 될 뿐이다,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서글픈 현실로 치자면 이것 뿐이 아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경험이 많고

그래서 그들보다 모든 면에서 더 많이 알고 더 잘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이 있다,

전에는 맞는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날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니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똑같은 조건인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새로운 것에 쉽게 적응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인지도 모른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었고 

컴퓨터도 그때 배웠는데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물어 가면서 배웠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컴퓨터가 지금처럼 흔한 물건도 아니었고

내 지인 중에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그런 것을 몰라도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건만 세상이 달라진 거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내 외 할머님은 말년에 우리가족과 함께 지내셨다,

이미 나이가 많으셔서 소일거리는 주로 TV시청이었는데

그 쉬운 리모컨 작동법을 너무나 어려워하셨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지금 그러면서 살고 있으니까.

그 쉬운 컴퓨터 “Power Point” 활용법을 배울 때 나는 너무나 어려워했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대하는 사람도 아니고 기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IQ도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나 보다,

그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전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생활, 직장생활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 나이든 세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건만

그렇다고 안배우고 버티기에는 남아있는 시간이 아직 많다.

나 같은 중년 세대들의 서글픔이 여기에 있는건 아닌지?

 

카오산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 청춘들, 밝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나처럼 나이든 사람이 될 것이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고민 만으로도 그들의 생각이 충분히 깊어질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10, 20, 30일에 업데이트됩니다.






인도 '마날리' 게스트 하우스 창문으로 보이던 풍경





홍콩 풍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