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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31 조회수1,83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8월 31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 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루카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어떤 사람이 몸이 너무 아파서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이곳의 한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
그대로 하면 어떤 병이든
낫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사람 역시 이 의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았고 처방전을 받았습니다.
이 처방전에는 몇 가지 열매와 허브,
그리고 플레인 요구르트가
적혀 있었습니다.
 위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해서 낸 처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환자는 처방전에 적혀 있는 것을
 따라 먹은 것이 아니라,
골방에 들어가서 계속 처방전만
꼼꼼하게 읽기만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병이 더 심각해져서 용하다는
이 한의사도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의 병이
낫는 방법은 그저 처방전만
읽는 것이 아니라, 처방전을
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성경만
 읽는다고 주님과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을까요? 그저 성당에 나가서
미사에 참석하면서 미사를 주례하는
신부님 얼굴만 본다고 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릴까요?
이런 식으로 보기만 해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어서 우리 구원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그 말씀을 따라야 하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저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에
가셔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다 함께 기뻐할 일이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순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말하면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고, 고향 사람들은 어떤 하느님의
은총도 체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그저 예수님을 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쫓아내면서 자기들에게
다가온 은총 자체를 걷어차고 맙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혹시 보고만
 있으면서 주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은총을 나의 것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은총 속에 사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람들의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긍정심리가

 ‘긍정만을 다룬다’ 혹은

‘부정의 반대’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긍정 심리는

 삶에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이정미)

힘 있는 말.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잘 알 것입니다. 양을 치다가 지루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정작 늑대가 나타나서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외쳤을 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이 아이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계속된 거짓말에 이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고 결국 아무도 듣지 않는

힘없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실한 말을 사용하는 것은

내 말에 힘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때로는

거짓된 말로 진정성을 없애고 결국

힘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주님의 말에는 힘이 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바로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역시

 진실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진정성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내 욕심을 채우는 기도를

통해서는 주님께 실망만 드릴 뿐입니다.

(나자렛 회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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