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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땀이 섞이지 않은 망치로는 달걀도 깰 수 없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31 조회수1,98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가해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땀이 섞이지 않은 망치로는 달걀도 깰 수 없다>
  

 


 복음: 루카 4,31-37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좋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말을 해 준 부모가 있고,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말을 해 준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나쁜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말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권위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분명 하느님의 계명을 가르쳤기 때문에 좋은 내용의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엔 권위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좋은 길로 나가게 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말에 권위가 있어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우리는 그 권위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심리학자로 꼽히는 아른힐 레우뱅10대 시절, 심리학자를 꿈꾸던 우등생이었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환각과 환청을 겪기 시작했고, 그녀의 세상은 온통 회색빛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귀가 이상해졌습니다. 친구가 말하는 소리보다 자신의 신발 끄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다음엔 눈이 이상해졌습니다. 보도블록에서 떨어져 다칠까 봐 건널목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다음엔 자신 안에서 선장을 만납니다. 처음엔 친절한 것 같았지만 갈수록 잔혹하게 아른힐을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친구라고는 내면의 선장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자아에 묶이게 된 것입니다.

 

정신병원 독방 침대에 묶여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공허함만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장은 밥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밥 대신 벽지를 뜯어먹었습니다. 정신병원을 몇 번을 들락거리며 수없이 자해하기도 하고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자해와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서 10여 년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그 원하던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책에서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치유해 준 것은 당시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니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조현병은 고질병이니 나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지만 그런 말들은 그녀를 변화시킬 어떤 힘도 주지 못했습니다.

 

어떤 치료사가 그녀의 두꺼운 기록철을 보더니 이런 상태라면,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라고 한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치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있을 때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려 괜찮아, 좋아질 거야!”라고 하며 그녀를 차로 태워주었습니다. 다른 때는 소리를 질렀겠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람들의 작은 친절함이었습니다. 나머지 모든 말들은 강요에 불과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 자체가 아니라 따듯함이라고.

[참조: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아른힐 레우뱅, 책읽는 다락방 J, 유튜브]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나옵니다. 말의 권위는 말의 힘입니다. 그러며 마귀를 쫓아내시는 모습이 나오고 그다음에 사람들이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라고 말합니다. 말의 권위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가리옷 유다 한 명의 마음도 바꾸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말보다 권위가 있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희망과 믿음을 주는 말씀이었다는 뜻입니다. 당신 말씀 안에 따듯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따듯함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신의 입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말은 어떠한 힘도 없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도 한 병사를 구하기 위해 많은 베테랑 군인들이 희생을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밀러 대위는 죽어가면서도 라이언 일병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라이언, 값지게 살아. 값지게 ... ”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가 된 라이언이 밀러 대위의 무덤 앞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여보, 나 부끄럽지 않게 살았지?

라이언 부인이 대답합니다.

그럼요!”

 

밀러 대위의 한 마디는 라이언의 평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에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 말씀에 피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피를 마귀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피가 섞인 말만이 내 안 마귀의 본성을 죽입니다. 하느님의 피가 곧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힘이 든 말씀은 권위가 있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땀을 흘리게 만들지 않는 망치는 달걀도 깰 수 없습니다. 땀과 함께 휘둘러지는 망치만이 권위를 가집니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고 합니다. 말이 따듯해지려면 그 말에 나의 따듯한 피가 섞여야 합니다. 각자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려집니다. 따라서 자기를 살리려고 이웃을 죽이는 사람의 말엔 권위가 없고, 자신을 죽이며 이웃을 살리려는 말엔 권위가 있게 됩니다.

    

 

 

 

 

https://youtu.be/VjhrrBbAbmc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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