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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9.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02 조회수1,78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코린 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복음 루카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마흔 넘은 사람들이 하는

많은 걱정 중의 하나가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었을 때는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중년이

되면서 기억나지 않는 것이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혹시 인지 장애, 소위

‘치매’가 일찍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정확한 정보가 기억나지 않아서

혀끝에서 맴돌다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설단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면서

걱정합니다. 만약 걱정된다면 이 사람의

일화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이 사람은 열차표를 잃어버려서

허둥지둥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열차표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사거나

 발권을 다시 받으면 되겠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반드시 열차표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자신이 가려는 목적지를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건망증이 심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건망증이

심했던 이 유명인은 누구일까요?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입니다.

일상 안에서 잊어버리는 것이 많았지만,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 속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보다 중요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닙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듭니다. 그들에게 대접받으면서 편안한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머무시면서 아쉬운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고장을 떠나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편하고 쉬운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것보다 하느님 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하느님의 뜻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랑보다

내가 베푸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오늘 독서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협력자이고,

하느님의 밭, 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생텍쥐페리)

인지 장애증

제 아버지는

인지 장애증 환자입니다.

‘인지 장애증’라고 하니까

조금 낯설지요?

‘치매 환자’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몇 차례의 수술 이후 머릿속에

지우개가 생기셨습니다.

지난번 면회 때에는 저를 보고서도

‘누구지?’라는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그때마다 하시는 말씀은

“몰라~”입니다.

아마 아버지께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단어일 것입니다.
인지 장애증을 앓는 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움을 갖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 외의 다른 환경에서는

인지 장애증 환자를 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인지 장애증

환자가 없을까요?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10%가 인지 장애증

환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나기

힘든 것은 그들이 모두 전국 5,287곳의

노인요양시설에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요양원 숫자만 늘리면

될까요? 우선 ‘치매’라는 말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치매라는 말의 뜻은 한자로

‘어리석고 미련하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치매보다 ‘인지증’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인지증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교육을 계속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요양원 숫자만 늘리는 것이

답이 아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 살아야 하는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편하다고, 힘들다고 공동체에서

 쫓아내서 따로 살게 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의 파견 사명을 떠올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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