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03 조회수2,254 추천수11 반대(1)

독자투고 중에 섭섭하다.’를 읽었습니다. ‘서운하다와 비슷한 말입니다. 섭섭한 사람의 대상은 주로 친하거나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신문사는 매년 2번의 광고를 신청 받습니다. 부활과 성탄 대축일 축하광고입니다. 미주 지역의 한인 공동체에서 축하광고비를 보내 주십니다. 신문사의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부활과 성탄의 선물입니다. 본당의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광고신청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다른 교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데 같은 교구 사제가 사목하는 공동체에서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 한 쪽으로는 섭섭함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섭섭했던 때보다는 제가 다른 분들을 섭섭하게 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어머니께 자주 안부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섭섭하셨을 겁니다. 사제라는 이유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감사하는 표현을 제대로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셨을 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닭이 울었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섭섭하셨을 것 같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훼손하는 인간에게 섭섭하실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섭섭함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담대하게 거리로 나가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섭섭함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평화와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토마 사도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토마 사도에게도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오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잘못을 탓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도 평화와 성령을 주십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10년 동안 검술을 연마한 제자가 스승에게 하산하겠다고 인사하였습니다. 스승은 마루에서 참외를 제자에게 던졌습니다. 제자는 단칼에 참외를 잘랐습니다. 실력을 입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승은 더 연마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년을 연마하였고 하산하겠다고 인사하였습니다. 스승은 이번에도 참외를 던졌습니다. 제자는 칼을 사용하지 않고 참외를 피했습니다. 참외는 땅에 떨어져서 깨졌습니다. 실력을 입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승은 더 연마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년을 연마하였고 하산하겠다고 인사하였습니다. 스승은 이번에도 참외를 던졌습니다. 제자는 손으로 참외를 받아서 스승에게 돌려드렸습니다. 스승은 비로소 웃으면서 하산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망, 걱정, 섭섭함, 두려움은 새 포도주가 아닙니다. 이해, 용서, 나눔, 사랑이 새 포도주입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대해서는 원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옳고 그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깨달음의 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넘어 용서하고 기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사람이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것이며, 하느님께 칭찬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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