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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이여[5] / 시나이 체류[3] / 탈출기[5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04 조회수1,837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 십계명-2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이여 /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탈출 20,7)

 

하느님께서는 두 번째 계명으로 말씀하신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이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이름(창세 32,30 참조)을 불러 아는 것은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 간청을 드리며, 그분을 민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분의 이름을 거짓된 맹세, 신성 모독, 마술, 저주 등 쓸데없고 위험한 일에 사용되어는 결코 안 되는 것일 게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근동에서 이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그들의 이름은 본질적으로 가문을 상징하였다. 우리도 족보 등을 보면 그러하지만, ‘몇 대 후손, 내지는 몇 세 등의 사용 이력을 보면 대충 짐작이 든다. 특히 한 인간이 다른 사람과 하느님 앞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이름으로 드러내 준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당사자 본인은 물론 가문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아주중요 관심사였다.

 

특히 하느님의 이름은 너무나 고귀하기에 감히 접근성을 거부하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그분의 이름은 어쩌면 당신 본성을 드러내기에 만인의 관심사일 수도. 그래서 모세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기 전에 불타는 떨기 앞에서, 너무나 두려워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3,6 참조) 하느님의 이름을 감히 여쭈었다(3,13 참조). 하느님께서는 나는 있는 나다라고 하나의 단어가 아닌, 아예 완전한 문장으로 답하셨다. ‘있는 나’, 이는 하느님의 신원을 상징한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계시는 분이시라는 거다.

 

그리고는 있는 나인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물음에 최종적으로 실제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 길로 곧장 돌아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그러므로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3,15)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실제 이름을 야훼라면서 모세의 뇌리에 분명하게 심어주셨다.

 

이 야훼라는 이름은 선조 야곱이 그토록 알고자 했지만, 끝내 밝히지 않은 이름이었다. 언젠가 야곱이 야뽁 건널목 건너 프니엘에서 밤새도록 하느님과 씨름을 하고서는,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창세 32,30) 하고 여쭈었지만, 그분 대답은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창세 32,30) 라는 답변만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야곱이 하도 기특해서인지 그의 이름을 명의변경까지 하시어,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 복도 담뿍 주셨다. 그렇지만 이름에 대한 그분의 답은 일절 없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는 당신의 신원인 있는 나와 실제 이름인 야훼를 밝히시면서, 함부로 부르지 말 것을 굳이 엄하게 당부까지는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오히려 야훼라는 이 이름에 대해 신원과 칭호까지 들먹이며 나름으로 소상하게 언급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가서, ''있는 나'께서 야훼라는 이름을 알려 주시면서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임을 분명히 일러주라 하셨다. 그렇다고 이참에 아예 당신의 이 이름을 막 불러 달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때 모세에게 마음껏 불러 달라고 했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간편하게 야훼 하느님‘, 또는 야훼님이라면서 마음 놓고 정답게 부르면서 다가갈 수 없었을 게다. 그들은 어디 이 신성한 하늘같은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도록 사회 관습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감히 어느 누가 입으로 말을 할 수가. 그래서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 이름을 발음하면서 읽는 대신, 그들은 그 이름을 그냥 아도나이로 바꾸어 읽는 관습이 자리 잡았다.

 

이제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는 직접 당신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지 마라라신다. 만약 함부로 그렇게 불렀다가는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계명으로 남기셨다. 다시 말해 부당하게 하느님의 이름을 언제 어디서나 부당하게 함부로 부르지 마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에 대사제가 일 년에 겨우 한 번 정도 속죄의 날에 지성소에서 대사제가 작은 소리로 부르는 것만은 허용되었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이름을 아는 특권까지는 주셨지만, 당신은 어느 피조물에게도 통제나 영향을 받지 않으심을 깨우치셨다. 특히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다른 이를 저주하거나, 자기 자신의 맹세를 강조하는 일을 완전히 금지시킨다. 이로써 모든 이가 미사에서든 일상에서든 하느님의 이름을 무책임하게 사용할 수가 없다. 다만 하느님의 이름을 좋은 목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허용될 게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명이 충실하고 야훼의 이름에 맞갖은 생활을 하는 것이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부당하게 부르지 않는 것이다. 야훼 자신이 거룩하듯이 그분의 이름 역시 거룩하기에, 그 이름은 존경받고 거룩해져야 하며 세속화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행하는 거짓 맹세는 그분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레위 19,12 참조).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맹세는 그야말로 신성해야 한다. 차마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을, 하느님 앞에서만은 정녕 부끄럽지 않게 하자.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세 번째 계명을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계속]

 

[참조] : 이어서 '십계명-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이름,있는 나,야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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