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9월 9일[(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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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9-09 | 조회수1,69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9월 9일 수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1서 말씀입니다. 7,25-31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답송 시편 45(44),11-12.14-15.16-17(◎ 11ㄱ)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임금님이 너의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금실로 수놓은 옷에 싸여 안으로 드는구나. 오색 옷 단장하고 임금님께 나아가는구나. 처녀들이 뒤따르며, 동무들도 오는구나.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임금님 궁전으로 들어가는구나. 당신 아들들이 조상의 뒤를 이으리니, 당신이 그들을 온 땅의 제후로 삼으시리이다.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복음 환호송 루카 6,23 참조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복음입니다. 6,20-26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너희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영성체송 시편 42(41),2-3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오늘의 묵상 루카 복음에 나타나는 행복 선언은 마태오의 것과 달리 네 개로 요약되고, 네 개의 불행 선언이 곁들여집니다. 행복과 불행을 대립시켜 서로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묘사하는 문학적 형식은 루카 복음의 전형적인 서술 방법이기도 하지요. 프랑스 리옹 국립 대학의 교수인 미셸 포쉐의 담론이 제게는 가장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행복을 ‘회개’(또는 개종)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회개’라는 말마디의 본디 뜻은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을 가리키는데, 반목하고 갈라진 것을 서로 이어 주는 것이 회개이고 개종이겠지요. 루카 복음에서 줄곧 강조하는 것도 바로 회개입니다. 사회적 통념으로 내쳐진 이들에게 굳이 더 가까이 다가가시는 예수님을 자주 묘사하고 그런 예수님을 못마땅해하는 이들, 곧 제 잇속을 챙기며 사회적 책임에 무감각한 이들을 고발하는 것이 루카 복음입니다.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행복은 배고픈 이들에게 주어지고 불행은 이미 배부른 이들을 향하여 있습니다. 행복하려면 부족함을 되새기고 간직해야 합니다. 행복은 충족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쉬워서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데서 가능합니다. 다만 그 아쉬움을 자신의 노력 부족이나 능력의 한계라는 순전히 개인적 책임으로 묻지 않고 서로에 대한 책임과 친교로 메꾸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과 교회가 다른 것은, 행복을 어떻게 추구하느냐는 것입니다. 행복은 서로를 향한 회개여야 합니다. 행복은 개인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화해와 사랑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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