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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 성모님을 기리면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15 조회수2,139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성모 마리아라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벅찬 말입니까마는 그 앞에 수식어 고통의가 붙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여인도 성모님만큼 한 많은 생을 살다가 가신 분이 또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지금 새벽 1시 반인 밖의 세상은 너무나도 조용합니다. 제 앞에는 광주교구에서 예전에 구입한 성모님의 기도하시는 상본으로 제작된 상이 하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리따운 모습의 얼굴입니다.

 

성모님의 얼굴을 지금 이 시대에 뵌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람 아니 한 여인의 일생을 바라보는 측면에서 성모님의 삶을 한번 묵상해본다면 벽촌의 한 시골의 순박한 처녀에서 머리엔 이슬이 내려앉은 새하얀 머리로, 얼굴은 탄력 있는 뽀얀 피부에서 주름살이 패인 얼굴로 변화셨을 겁니다. 나무는 나이테를 보면 나무가 살은 일생의 환경을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나무에게는 나이테로 알 수 있듯이 성모님에게는 뭐가 이런 걸 대신 알 수가 있을까요? 저는 아마 성모님의 얼굴을 만약 뵌다면 그 모든 게 성모님의 일생을 비춰주실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모님의 기념일인 만큼 성모님의 고통을 한번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모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는 게 사랑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수난공로를 묵상하는 게 엄청만 큰 보속이 되는 것처럼 아마도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삶을 묵상한다면 예수님께서도 참으로 흐뭇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한 여인의 삶 속으로 빠져들어 마치 저희가 성모님이 된 것처럼 잠시만이라도 묵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벽촌의 시골에 사는 여인입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부모님 아래에서 성장한 처녀였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장래를 약속한 한 남자와 약혼을 했습니다. 처녀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있었을 겁니다. 너무나도 순박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꿈에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성령으로 인해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하는 전언을 듣게 됩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두렵고 떨렸을 겁니다.

 

지금 혼인도 하지 않은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천사의 말에 순명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순명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제일 먼저는 약혼을 한 요셉의 얼굴이 떠올랐을 겁니다. 아니면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을 겁니다. 이 일을 어떻게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있을지 말입니다. 이걸 생각만 하면 앞이 캄캄했을 겁니다. 또한 주위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로 인해 부모님에게 돌아갈 비난뿐만 아니라 당시의 율법에 의하면 죽음도 생각해야 하니 말입니다.

 

여리고 여린 처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 앞으로 펼쳐지게 되니 암담하셨을 겁니다. 부모님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셉 성인에게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꿈에서 성모님의 이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셔서 요셉 성인도 그 당대에 의로운 사람이라 성모님을 보호해 주시는 극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이를 낳을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고 또 출산한 아이를 동물의 밥통인 구유에 뉘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런 누추한 곳에 뉘였다고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가슴이 참으로 찢어질 겁니다. 이 아이를 율례에 따라 성전에 봉헌을 하면서 시메온으로부터 아들의 삶과 또 이로 인해 앞으로 성모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언을 듣게 됩니다. 이 또한 무슨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얼마나 가슴을 조렸을까요? 이건 정말 피를 말리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니 더더욱 그 고통은 정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들이 장성을 해서 본격적으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아들이었지만 성모님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에서 일어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에서 보시다시피 비록 아들이지만 아들의 뜻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신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드디어 시메온의 예언처럼 성모님의 가슴이 꿰찔리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면서 가시관을 쓰신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병사들의 가죽 채찍으로 온몸에도 피가 흘리고 있는 아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입을 막고 가슴으로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을 겁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아들을 내려서 안아 품었을 때 그때 성모님의 마음이 오죽하셨을까요? 3일 만에 아들은 부활의 몸으로 다시 성모님 앞에 나타나실 수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셩령을 약속한 후에 하늘로 승천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신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사도요한 사도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아들 역할을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때 성모님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도들과 복음전파를 위해 애를 써셨습니다.

 

어느덧 육신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하늘로 불러모셨습니다.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5단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주시는 영예를 주십니다. 이게 대략 성모님의 간략한 일생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한 여인의 일생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일생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가 답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할 수 없는 일도 순종을 하긴 했지만 그 순종으로 인해 일어나는 고통도 끝까지 인내하셔서 그 인내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아들도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가셨지만 그게 하느님의 뜻이었고 그로 인해 온 인류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가 주어져서 마지막에는 이 모든 고통을 함께해 주신 성모님의 고통을 천상에서 아들이 그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주시는 모습에서 우리도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갖은 온갖 고통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면 하늘나라에서 성모님께서 받으신 그런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오늘 하루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성모님의 은총이 가득 임하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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