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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루가4,25-2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7 조회수1,569 추천수0 반대(1) 신고

성경바로알기

예수님의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루가4,25-29) 

 

연중 제17주 금요일: 예수님 고향 사람들의 불신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루가복음 4:25-27) 

25 잘 들어라. 엘리야 시대에 삼년반(42, 1260, 하느님의 교회가 광야에서 양육 받는 시간!) 동안이나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온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지만 26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다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만 보내 주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나병 환자가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고쳐 주시지 않고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 만을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

 

율법주의, 이스라엘 안에 있는 과부, 문둥이는, 단 한 사람도 나음을 못 받아요. 못 먹는다는 뜻이에요. 빵을! 예수를! 자기 행위 때문에, 제사를 지키기 위해! 그런데 고 이스라엘, 예루살렘 밖의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어떤 자인지 알고, ‘빵 주세요!’ 그러더라는 거예요. 율법주의 밖에 있는 자들이!

먼저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말라기에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 돌리고,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리는, ‘화목하게 하는이는 뜻이에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게, 엘리야라 그러죠?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예요. 원래! 엘리야는 예수의 모형이란 말입니다. 그 예수님의 삶을 쫓아서, 작은 예수로 살게 되는 이들이 다, 엘리야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자요한! 그를 엘리야라 하는 거요. 예수처럼 참수 되어 죽어요. 세상 왕의 죄 됨을 고발하고 죽는 거예요. 예수의 모형이란 말예요. 그것이!

엘리야 시대에, ‘예수의 시대에라고 하면 돼요. 하늘이 세해 여섯달, 3년반 동안 닫혀요. 흉년이 들어요. 기근입니다. 진짜 하늘에 빵이신 예수가 공생애 3년 반 동안 이 역사 속에 계셨는데, 이 역사가 그 빵을 못 알아 볼 뿐만 아니라, 먹지도 않아요. 기근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빵을 못 알아봤어요.

 

(요한복음 1:10-11) 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 이게 예언자가 고향에서 배척받는다는 고 이야기예요.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 가면 늘 다 배척 받게 된다는, 보편적 공식이 아니라! 그럼 저는 괴산에 가면 거기서는, 말씀도 못 전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말예요. 여기 보면 분명 자기 나라, 자기 백성이란 말이 나와요. 그들도 자기 백성인데 못 알아보더라는 거예요. 자기 나라(), 자기 백성인데.

이게 아모스서에 나오는 말씀의 기근이라는 거예요. 세상은, 이 역사는, 절대 말씀을 못 알아 봐요. 그리고 자기들이 갖고 있는 율법이라는 왜곡된 말씀으로, 진짜 말씀이신 예수를 때려죽이게 되어 있어요. 이게 마귀(魔鬼)라는 거예요. 진짜 말씀이신 예수를 믿으라고 율법을 줬더니, 예수님 절대 의존의 상태로 돌아오라고 율법을 줬더니, 그 율법 자체를 말씀으로 곡해해서, 그들의 왜곡된 말씀으로, 진짜 말씀을 때려죽이는 게 교회의 일이에요. 그래서 회당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이 일이! 이 엘리야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까?

 

(열왕기상 17:9) 9 '여기를 떠나 시돈 지방의 사렙다로 가서 그 곳에서 살도록 하여라. 거기에 한 과부가 살고 있는데 내가 그 과부로 하여금 너에게 음식을 주도록 해 놓았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3년 반의 기근(飢饉)을 주세요. 다 굶어 죽을 판이에요. 이제! 다 죽는 거예요. 그리고는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명령을 하는 거요. ‘시돈에 속한 사렙다로 가라그래요. 히브리어로 시돈사람을 낚다라는 말이고, ‘사렙다제련하다, 연단련하다란 뜻이에요. 이 어구를 직역하면, ‘시돈을 위하여 사렙다하라예요. 직역하면. 시돈을 위하여! ‘사람을 낚아 올리기 위해 제련하러 가라라는 뜻이에요.

이게 3년 반의 기근 동안에, 성도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3년 반이란 말예요. 일년, 이년, 반년! 율법주의의 본산(本山)인 이스라엘은, 지금 기근으로 다 굶어 죽을 판이에요. 그런데 자기들은 굶어 죽을 거라는 걸 몰라요. 이스라엘은! 진짜 기근이 들었는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 너무 행위에,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풍성하기 때문에 몰라요. 그들에게는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어요. 그래서 기근인데, 그들은 모르는 거예요. 율법주의의 이스라엘은, 절대로 말씀이신 예수를 못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요. 창조의 주! 그 분을 못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밖에 황폐(荒弊)한 집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 과부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직역을 하면, 황폐한 집, 빈 집이에요. 아무 것도 없는! 그래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지는, 멸망(滅亡)당하는 빈 집! 황폐한 집!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과 대조되는 개념인 거예요. 하려한 성전! 화려한 집인 이스라엘과는 대조적으로, 진짜 먹을 게 없는 황폐한 집! 빈 집이 등장하는 거예요.

과부는 결핍(缺乏)이에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기 부인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한 줌의 밀가루도 생산해 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 줌 남은 밀가루로 빵을 해 먹고 죽어야 되겠다. 나는 이제 죽는구나!’라고, 스스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나는 이제 죽는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고작해야 밀가루 한 줌인데. 이거는 한 끼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나는 이제 죽는구나.를 지금 이 여자가 고백하는 거예요. 보세요.

(열왕기상 17:11-12) 11 여인이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했다. '기왕이면 떡도 한 조각만 가져다 주시오.' 12 여인이 대답하였다. '군 떡이 없읍니다. 있다면 천벌을 받아도 좋습니다. 저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뒤주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 몇방울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조금 주워다가 저희 모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있는 것이나 모두 먹을 작정이었읍니다.'

사람을 낚으러 온 하느님의 사람이 뭘 요구해요? ‘마지막 남은 밀가루도 갖고 와!’ 그래요. 다 뺏어버리는 거예요. 완전한 기근(飢饉)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요. 완전한 기근! ‘갖고 와!’ 그랬더니 이 집에, 다른 곳은 다 3년 반 동안 기근인데, 이 집은 양식이 끊이지 않는 풍년(豊年)이에요. 요 집에만! 퍼도 나오고, 퍼도 나오고, 요 대조(對照)가 일어나는 거예요.

다 뺏어버리는 거예요. 하느님이! 하늘의 생명(生命), 풍성한 하늘의 생명을 받는 자는, 역사 속에서 몽땅 뺏긴다는 걸 보여주는 거요. 이스라엘은? 너무 풍성하게 자기 것을 갖고 있었어요. 요 여자만 다 뺏겼어요. 요건 야곱, 즉 이스라엘의 때에, 그들을 기근으로 굶어죽게 만들어서, 애굽으로 보내어, 결국 모세라는 중보자를 통해,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구원해 내셔서, 만나를 풍성히 내리시는, 출애굽의 이야기를, 다시 작은 에피소드로 그려내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이게요! 성경은 다 구원의 이야기, 예수의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 밖에 없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굶주림!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시간과 생명을 모으고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 난 도저히 불가능한 사람이 맞구나! 이젠 내 에너지로 살던 삶은, 밀가루 한 줌 밖에 남지 않은 바닥의 삶입니다.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요 고백을 하게 하는, 고 진짜 굶주림의 삶은, 복된 굶주림의 삶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흉년을, 그 굶주림을, 메가스라는 단어를 써서, 심한 기근’(루가4,25)이라고 성경은 번역했지만, 위대한흉년이란 뜻이에요. 거룩한 흉년! 위대한 흉년! 위대한 기근! 구원을 위한 흉년! 구원을 위한 굶주림! ! 나는 아닌 거구나!’

이렇게 나는 이제 죽을 수밖에 없는 결핍의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터지자, 과부의 집에 풍년이 들었어요. 퍼내고 퍼내도 밀가루 그릇이 가득 차는 기적! 요걸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것까지 다 털어내면, 하느님이 이 세상에서 그치지 않는 축복을 허락하리라고 사기 치는…… 그건 예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거예요. 십자가를 설명하는 걸 갖고, 사람들 등쳐먹는 거니까. 고게 마귀(魔鬼)라니까요. 요게 하늘의 양식이다.’를 보여주는 거예요.

 

보세요. 화려한 성전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은, 정작 기근으로 죽어가고 있고, 황폐한 집, 빈 집에서 가진 것 다 뺏긴 과부는, 영원히 그치지 않는 양식을 받아요. 그런데 그러한 하늘 백성들의 이 역사 속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과부가 낳은 육적 자손이 죽어요. 그리고는, 하느님의 사람이 보낸 그가, 생기를 불어 넣은, 새 아들이 살아오는 거예요.

요게 모리아 산에서 이사악, 자기가 낳은, 육적 이삭의 심장에 칼을 꽂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예요. 십자가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십자가를, 그가 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살더라는 거예요. 자기가 내놓는 떡으로! 내놓는 모든 행위를 부정당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하느님이 살려주는, 새로운 후손(後孫)! 예수로 사는 거예요. 이 사람이요! 예수님이 회당에서 그 이야기를 한 거예요. 지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도 과부가 많았다고 말씀하신 건, 이스라엘도 결국 황폐한 집, 빈 집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의 자아인식은 사렙다 과부와 많이 달랐던 거라 말입니다. 그들은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절대로 존재일 수도 없고, 생명을 존속할 힘도 없는 자들이었어요. 그럼에도, 그들은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도, 자기들의 힘으로 제사와 율법을 통하여, 스스로의 생명, 그 시간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구요. 아니, 하느님은 그 시간이 낳은 후손을 죽인다니까요.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죽여요. 그리고 하느님의 생기로 살아나는, 새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말씀이신 예수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자는, 죽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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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예요. 나아만의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이스라엘에도 문둥병자가 많다 그러죠? 이스라엘이 문둥병자다란 뜻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안 오더라는 거예요. ? 자기가 문둥병자인지 아는 놈이 하나도 없더라는 거요. 이스라엘에! ? 잘하고 있었거든요. 열심히 율법 지키고 제사지내고 있었거든요. 하나도 안 오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밖에 아람이란 나라에서, 이방인 문둥병자가 하느님의 사람을 찾아와요. ? ‘나는 문둥병자 맞다. 그러니 나아야 된다.’라는 인식이 요 사람에게만 있는 거요. 요 사람이 은혜 받은 자예요.

나아만은 아람 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하죠?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이스라엘 왕은 이스라엘 전체의 대표죠? 옷을 찢으면서, ‘못 고치는데그래요. 율법주의를 예수님이 조롱하는 거요. 지금! 이스라엘 왕이, 문둥병자 하나가 왔는데, ‘우린 못 고치는데그랬다니까요. 율법으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요. 거기에 엘리사가 개입을 하죠. 왕궁 밖에 엘리사가, 멀리서서 말씀을 던져요. 뭐라고? 요르단! 흐르다는 뜻이죠? 요르단에 들어가 일곱 번 담궈라! 일곱 번이 무슨 수? 언약, 약속의 수예요. 너는 말씀에 의해, 언약에 의해 깨끗해 질 수 있다는 걸, 요 나아만이 알아듣는 거예요.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야기예요. 내가 문둥병자 맞습니다.’라는 자, 그자가 하느님의 은혜로 약속 안에서 구원받는 거! 엘리사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를 이스라엘 회당에서, 율법과 제사를 열심히 붙들고 있는 그들에게 해 버렸으니,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취급했겠어요?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마귀, 더러운, ‘프뉴마 아카달토스가짜 말이, 진짜 말, 복음이 떨어지자, 어떻게 충돌이 일어나는 가를 보여주는 거란 말예요.

자기들은 지금 제사와 율법으로, 구원에 도달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열심으로 다른 이방 사람들과의 구별과 분리의 차단막을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너희는 지금 기근으로 죽어가는 이스라엘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고쳐낼 수 없는 문둥병자들이다고 한 거예요. 그 회당 안에 있던 이들이, 진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고, 진짜 하느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라면, 그러한 하느님의 말씀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돼요? ‘그러면 나 좀 고쳐주세요. 나 좀 배부르게 먹여 주세요.’라고 해야 되죠? 어떻게 했어요?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밀어버리려고 했어요. 요게 마귀라는 거예요.

 

2018년 03월 05일 사순 제 3 주간 월요일 / 고향에서 배척받는 예수님

(루가복음 4:28-29) 28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29 들고 일어나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예루살렘! 율법주의! 그들이 성전이죠. 거기가 성전이 있던 자리잖아요? 구약의 성전! 거기서 밀어버리려고 했단 말예요. ‘나가라!’는 거예요. ‘우리 포도원에 너 같은 돌은 필요 없어!’하고 계속 하느님이 모퉁이 돌로 준 걸, 포도원 밖으로 내보내는 거죠? 히브리 사람들은 선악과를 그려보세요, 하면 포도를 그립니다. 그래서 포도원 밖이라는 건, 율법주의 밖으로 계속 던져버리는 거예요. 선악과 밖으로 던져버리는 거요. 그래서 성경에 포도밭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거예요.

28절을 보면, 회당 안에 있던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났다라고 하는데, 이건 단순히 화났다는 뜻이 아녜요. 예수님의 말씀이 교회에 떨어지자, 모두 화가 났다는 건데, 화가 났다는 어구가, 헬라 원어로 보면, 에플레스테산 판테스 디무거든요. 에플레스테산성취되다, 완성되다라는 뜻이고, 디무열정, 욕심이라는 단어예요. 그런데 어떤 열정인가 하면, 희생 제사를 지키는 열정(熱情)이에요.

여기에 쓰인 헬라어 디무스두시아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두시아란 단어가 희생제사예요. ‘분리하다, 희생제사, 깨다.’ 그러니까 진리를 둘로 깨버리는 거예요. 이게 희생제사예요. 진리는 하나란 말예요. 그런데 인간들은 그걸 항상 깨죠? 분리를 만들어서, 차등! 상급! 요런 걸 이야기하는 게, 인간들이란 말예요. ? 인간들의 열심과 노력은 가치 있으니까! 하느님의 진리는 약속인데, 그래서 약속을 깨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요. ‘약속을 깨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 복음이 떨어지게 되면, 세상이 그 복음을 알아듣고 회개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행위, 즉 희생제사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과 열정이, 오히려 확고해지더라. 요걸 화를 내다로 번역을 해놓은 거예요. 희생제사! 자기들의 율법, 행위를 지키려고 하는 인간들의, 고 열정! 노력이 더욱 더 확고해지더라! 성취되더라! 완성 되더라! 이런 뜻이에요. 진짜 말씀이 떨어지니까!

아니라는 거요. 저건 아니라는 거요. 그게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밀어 떨어뜨리려는 그런 모습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예수님이 산 위의 동네,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에 떠밀려 죽는 모습인 거죠.

그런데 예수님을 못 죽여요. 아직 십자가 지실 때가 안 됐거든요. 요 날이 안식일이었어요. 왜 그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데리고 갔는데, 못 죽였을까요? 안식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걸을 수 있는 걸음의 수가 있었어요. 율법으로 예수를 죽이려고 끌고 갔는데, 조금만 더 가면, 밀면 되는 데. 이제 다 온 거예요. (하하하) 그런데 못 죽인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로 갔다는데, 이게 제 길로 가셨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 은혜의 길로! 율법이 그를 죽이려고 할 때, ‘끝까지 제 길로 가시더라.’

>>* 유대교 안식일법의 39가지 범주들중~39. 호짜아흐(Hotza'ah) - 운반하기

율법은 안식일에 개인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물건을 옮기기, 운반하기, 던지기, 밀기 등을 금지한다. 공공영역의 한 장소에서 대략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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