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9.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7 조회수1,65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0년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 에제 18,25-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5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제2독서 필리 2,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복음 마태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어떤 분이 실수로 회사 동료의

바지에 콜라를 쏟았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떻게 해요? 엉덩이까지

홀딱 젖었어요.”라고 말하자 회사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괜찮아요. 엉덩이가 조금 더

달콤해졌을 뿐이에요.”
바지에 콜라를 쏟은 사람은

이 회사 동료를 앞으로 어떻게

볼까요? 이제까지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을 것입니다.

만약 자기 바지에 콜라를 쏟았다고

화를 낸다면 좋은 감정을 갖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화내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머로

 넘기는 모습에서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며칠 전, 성지를 방문하신

매님으로부터 자기 본당에

찾아온 손님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론하시는데 본당

신부님을 계속 칭찬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순간 누가 다르게 보였을까요?

칭찬의 대상인 본당 신부님이 아니라,

칭찬하는 손님 신부님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다르게 보일 때는,

 지금 자신을 높이려고 할 때가

아닙니다. 또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려고 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좋고

선한 일을 행할 때였습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때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특히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좋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분명 나의 이웃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서로 정반대인 두 아들의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두 아들에게 일렀는데,

맏아들은 싫다고 했다가

생각을 바꿔서 일하러 갑니다.

반면 또 다른 아들은 가겠다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이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고서 이행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하고서 나중에 생각을

바꾼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했습니다.

일하러 가겠다고 하고서 가지 않은

아들은 꾸지람을 듣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녀들이 믿은 뒤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은 그들에게가

아니라 너희에게 먼저 왔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았다.

그들은 거부하지 않고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짐이 무거워진 이유는

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내 생각에 있었다.

(서영은)

품위있게 삽시다.

가정 폭력으로 상처받은 아이는

오랫동안 정신치료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한 정신과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작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은

안 오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
정신치료를 받는 아이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지요.

그 상처를 준 사람이 문제이고,

상처 준 사람의 정신을 올바르게

치료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늘 피해자가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상대의 문제까지 내 문제로

끌어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대전교구 황새바위 성지 십자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