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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볼 수 없는 하느님 얼굴[28] / 시나이 체류[3] / 탈출기[7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7 조회수1,529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8.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 결과[2/3] 볼 수 없는 하느님 얼굴(탈출 33,1-23)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과 함께 이곳을 떠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네 후손들에게 이것을 주겠다.’ 하며 맹세한 땅으로 올라가거라. 나는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그곳에 사는 가나안족을 비롯한 여러 족속을 몰아내겠다.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도중에 내가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패물을 몸에서 떼어 내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호렙 산에서부터 패물을 벗어 버렸다.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패물을 몸에 다는 사람이 없었다.

 

모세는 만남의 천막을 챙겨 진영 밖으로 나가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주님을 찾을 일이 생기면,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모세가 천막으로 갈 때면, 온 백성은 저마다 천막 어귀에 서서,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천막 어귀에 머무르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이 구름 기둥을 보면, 온 백성은 저마다 경배하였다. 주님께서는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이라는 것도 생각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만 저와 당신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다른 모든 주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거듭 너에게 말하지만, 너는 이 백성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네 후손들에게 이것을 주겠다.’ 하며 맹세한 땅으로 올라가거라. 나는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가나안족,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몰아내겠다. 네가 청한 모든 일을 내가 해 주겠다.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너는 내 눈에 든다.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겠다.”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이 바위에 서 있어라.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푸시겠단다. 우리가 야훼라는 당신 이름을 기억하시면 죄 많은 우리에게 베푸시겠다나. 그렇다. 회개하고 그분께 다가가자. 비록 그분 얼굴을 보지는 못할망정, 예수님께서 오시어 베푸신 연민의 정을 봐서라도 우리는 그분 얼굴을 본 것이나 다름없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라는 필립보의 요구에, 예수님께서도 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요한 14,8-11 참조)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동정을 느끼고, 예수님을 통해서 선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본 것이다.

 

아무튼 하느님께서는 수차에 걸쳐서, 당신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면서, 당신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나. 그렇지만 본 그 순간, 그 순간에 당장 죽는다는 말씀은 없으셨다. 자비와 동정의 하느님께서 감히 어떻게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가? 그렇다. 그분을 본 이는 반드시 죽는다. 죽어야만 부활할 것이니까. 부활해야만 그분과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자. 하느님의 본성인 신비는 우리 인간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영원히 포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어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계속]

 

[참조] : 이어서 '29.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 결과[3/3] - 새 증언판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패물,만남의 천막,젖과 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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