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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 (루가복음 5:4-10) <후편 >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2 조회수1,510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경바로알기 2020.10.02.

(루가복음 5:4-10) <2020.9.28.후편 >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 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 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 먹었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공동번역성서 사용)

 

, 예수님께서 그물을 깊은데에 던져서, 무엇을 건져 올리라 그래요. 깊은 데라는 건,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곳인데, 물고기가 그물 가득 올라오죠.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물고기, 다그, 연합(聯合)과 다산(多産)과 증대(增大),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가치를 자랑하려고 하는, 율법 아래에서의 인간들을 상징(象徵)한다, 그랬어요. 이게 세상이에요. 요 물고기와, 나중에, 예수님이 넌 이거 말고 사람 낚게 할 거야!라고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대조하는 걸 잊지말란 말예요. 요게 율법 아래에서의 인간들이란 말예요. 그 물고기 가요. ‘다그!

 

시몬은 베드로, 물을 내는 반석이 되어서, 사람을 살려야 되는데, 시몬인 상태에서는, 말씀을 가지고도, 물고기만 낚아 올리더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거기에서 성경이 이상한 표현을 써요. 시몬 베드로의 그물이 찢어졌다(개역성경) 그랬는데, 디알그래소라는 단어는, ‘조각조각 나서 깨지다라는 뜻이에요. 그물은 깨지지 않죠? ‘조각조각 부수어지다.’라는 뜻이에요. 하나가 아니고, 조각조각 부수어지다! 그러니까 보세요. 성경이 온전히 예수로 이해되어지지 않고, 조각조각 부수어져서, 교훈이 되고, 가르침이 되고, 행동강령이 되고, 이래 버리면, 그게 물고기를 건져 올린다는 뜻이에요.

 

그물이 찢어 졌다는 건,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냥 그물이 터져버렸다는 뜻이 아녜요. 그 원어를 보면 조각조각 나다!’ 그게 성경을 율법(律法)으로 보는 거요. 성경, 율법은요, 예수거든요. 그런데 율법을 규례(規例), 명령(命令)으로만 보면, 이게 신명기 28장이죠? 명령과 규례라 그러잖아요? 지키면 복 받고, 안 지키면 저주 받는다. 명령과 규례로 보면, 율법은 조각조각 세분화(細分化)’되는 거예요. 그 걸로는 물고기 밖에 건져 올릴 수 없어요. 아담 아래, 율법 아래에서의 인간들!

 

(잠언 12:13) 13 못된 사람은 입술을 잘못 놀려 올가미에 걸리지만 착한 사람은 곤경(환난)에서 벗어난다.

입술을 잘못 놀려가 뭐요? 잘못된 말이에요. ! 잘못된 말씀! 그 말씀에 대한 이해는, 인간들을 그물에 걸리게 한다는 거예요. 인간의 행위, 도덕과 윤리와 성숙의 강요로 축약되는, 구약의 오해된 말씀! 그걸 떠올리면 돼요. 하느님의 말씀을 곡해(曲解)하면, 바로 그러한 그물에 걸리게 되는 거예요.

 

(이사야 19:8) 8 고기잡이들도 탄식하리니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들이 모두 슬퍼하고 물에 그물을 치는 자들이 낙담하리라.

무의미한 수고로 그물을 던지는 자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 시몬의 모습이에요. 고기 하나도 못 잡은 시몬의 모습! 그물을 계속 던지는데, 계속 아무 것도 못 잡는 거예요. 피곤할 것이다.

 

(전도서 9:12) 12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죽을 날을 모른다. 모두들 그물에 든 물고기 같고 덫에 치인 새와 같은 신세라, 갑자기 액운이 닥치면 벗어날 길이 없다.

역시 물고기와 그물이 등장하죠. 그런데 하느님이 던지신 그물도 있죠?

 

(마태복음 13:47) 47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쳐서 온갖 것을 끌어 올리는 것에 비길 수 있다.

여기에서 그물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 ‘세게네라는 단어는 장비하다, 장비를 갖추다’ ‘가구(家具)’라는 뜻이에요. 히브리 사람들이 성전에 비치되는 그 가구를 가리킬 때, ‘세게네라는 단어를 썼어요. 여러분, 성전의 그 가구! 기구들은 모두가 다 복음! 하느님의 말씀을 설명하는 거였죠? 떡상, 촛대, 번제 단, 모든 게 다! 그러니까 그건 눈에 보이는 복음! 말씀이란 말이에요.

고 말씀! ‘세게네에 걸려요. 걸리는 데, 좋은 고기, 나쁜 고기가 한꺼번에 걸려요. 그런데 나중에, 마지막 때가 되면, 그 말씀에 걸린 걸, 요건 좋은 고기, 요건 나쁜 고기. 골라낸다, 그랬어요. , 여기에 한 울타리에 같은 말씀을 듣는 이들이 이렇게 있어요. 그런데 이 중에 가라지가 있고, 알곡이 있다고요. 같이 걸리는데, 하느님께서 나중에 골라내요. 어떤 자를 골라낼까요? 같은 말씀을 듣고도, 이걸 인간들의 행위, 윤리, 규범, 율법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말씀을 나는 붙들고 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결국은 가라지, 나쁜 고기로 골라내지는 거예요. 이게 바로 저주의 그물에 걸리는 거예요. 이것이요!

? 하느님의 말씀은 그냥 똑같아요. 말씀은 던지는데, 그물이에요. 그런데 엉뚱한 그물에 걸리는 자가 있단 말예요. 율법의 그물! 요게 나쁜 고기란 말예요. 여러분! 그게 바로 조각난 그물! 찢어진 그물! 거기에 걸린 물고기란 말예요.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이 그물에 걸린, 聖徒. 성도와 물고기가 대조되고 있는 거란 말예요. 율법 아래의 인간들! 다산과 연합과 확장과 번영만을 꿈꾸는 자들! 이게 다그라 그랬잖아요? 물고기!

 

(잠언 18:7-10) 7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 매인다. 8 고자질하는 말은 맛난 음식과 같아 뱃속 깊이 들어 간다. 9 제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일을 망치는 사람과 사촌간이다. 10 야훼의 이름은 튼튼한 성루, 무죄한 사람에게 안전한 피신처가 된다.

미련한 자의 말, 엉터리 말을 갖고 있는 자도, 어디로 들어가는데, 그건 그물에 걸리는 거고. 하느님의 백성은, 야훼 이름이라는 견고한 망대로 달려가는 거예요. 견고한 망대! 참 성전인 예수 안! 망대! 예수 안! 보세요. 이렇게 그물과, 진짜 하느님의 이름, 하느님의 말씀이 대조되고 있고, 엉터리 배! 노아의 방주인 예수라는 배! 이렇게 대조되는 거란 말예요.

 

(하박꾹 1:14-16) 14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 고기로 만드시고 왕초 없는 벌레(곤충)로 만드시어 15 그자들의 낚시에 걸리게 하십니까? 그물을 쳐서 사람을 끌어 내고 좽이(초망)로 사람을 잡아 내고는 좋아 날뛰며 16 그물 덕분에 기름지고 살진 것을 먹는다고 그물에다 고사를 지내고 좽이에다 분향하는 자들입니다.

인간들은, 모두, 성도도 이 세상에 올 때는, 다 물고기로 오는 거죠. 선악과 입에 물고 오니까, 누구도 다! 우린 다 아담들로 오는 거, 물고기로 오는 거요. 그걸 그물로 잡는다는 뜻이에요. 그리고는, 나쁜 고기는 영원한 불 못으로 던져 버리고, 거기에 걸린 좋은 고기만, 하느님나라로 끌고 올라가는 그런 뜻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루가 복음 5장의 그 시몬! 아직 베드로라는 이름도 받지 못한 시몬이, 그 시므온의 배! 기근의 배! 갈증의 배로 잡은 물고기는, 저주의 물고기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저주(詛呪)의 배가 바다에 빠지는 걸로 끝나는 거예요.

 

(루가복음 5:7)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 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그물이 조각조각 났어요. ‘, 이거 아니네. 왜 안 걸리지?’ 조각조각 나면 큰일 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말씀을 하신 예수께 도와주세요!’ 해야 되는데, 또 다른 배, 장사하는 배죠. 그것도. 또 다른 배에 있는 다른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죠? 이게 이스라엘의 역사였어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일부러 바벨론의 종으로, 애굽의 종으로 보내면, 이들은 꼭 다른 나라에게 가서 원군을 청하죠?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나보겠다는 거예요. 고건 안 되는 거죠?

 

지금 시몬이 그 일을 그대로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두 배가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하는데, 그건 고기가 너무 많아서, 만선(滿船)으로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 뿌띠조라는 단어는, ‘빠져서 가라앉아 버렸다라는 뜻이에요. 그 배가, 바다에, 빠져 버리면, 빠져서 가라앉아버리면, 그건 끝이에요. 멸망(滅亡)이에요. 시몬은, 고기 한 마리 못 건지고, 그냥 나온 거예요. 그리고는 하느님 앞에서 뭐라 그래요? 엎드려서, ‘내가 죄인(罪人)입니다.’ 이게 끝이에요. 죄인의 결국이 그런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똑같은 일이 있는데, 그 때는 이제 베드로로 예수님 앞에 엎드려요. ‘내가 죄인입니다가 아니라,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로 나오는 거요. 베드로가 어떻게 뭐가 바뀐 게 아니라, 십자가가 그를, ‘행동 doing’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being’를 바꿔버리는 거예요. 빠져버린 거예요. 잡긴 잡았어요. 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빠져버렸어요. 멸망(滅亡)인 거예요. 이렇게 시몬에서 베드로로 환골탈태를 해가는 과정이, 성도의 신앙생활(信仰生活)이에요. 시몬의 열매는 고작, 물고기, 인본주의, 율법주의의 세상적인 열매일 뿐이며, 그것은 곧 저주의 바다에 빠지는 사망의 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시작은, ‘나는 죄인입니다. 하느님. 엉터리 물고기나 잡은 시몬입니다.’라는 고백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거기서 시몬이 부름을 받는 거니까. ‘! 나는 이런 놈이네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란 뜻이에요. 거기서부터 복을 받고 시작한 게 아니라니까요. 물고기 왕창 잡게 해줬더니, ‘, 나에게 이런 복을 주는 분이야?’하고 따라간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엉터리 물고기나 잡는 시몬! 광야! 사막이구나!’를 알아야, 그 생수이신 예수를 쫓게 되는 거예요. 우리교회(하느님백성)가 그거 하자는 거예요.

 

(루가복음 5:10)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보세요. 이 에피소드는, 고기를 많이 잡은 게 복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메시지로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러한 추구를 부수어내어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그게 아닌, 예수를 전하게 하는, 사람을 낚는 자로 만들어내는 거! 그게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다!’를 설명하는 거요.

여러분의 재산이나, 명성이나, 보람 등을 손익계산서 위에 올려놓지 마세요. 화만 나요. 성도의 삶은, 그런 존재의 부가가치를 향하여 매진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지 않아요. 성도는 오히려 그러한 것을 추구하고 쌓는 삶에서 끌려 나와서, 예수만을 의지하고, 예수의 십자가만을 의지하는, ()하는 자리, 부인(否認)되는 자리로 끌려가는 삶인 거예요. 그래서 시몬이 가족과 배와 그물을 다 차압(差押)당하고, 거기서 고기 몇 마리 갖고 쫓아갔어요? 아니 배가 가라앉고, 알몸으로 나왔다니까요. 모든 것 다 뺏기고, 예수만 쫓아가는 거! 그게 올바른 성도의 삶이란 말입니다. 그게 복이에요.

성도의 삶은 매 순간이 성공의 삶이에요. 매 순간이 승리(勝利)의 삶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고, 이미 승리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승리와 성공이, 어떠한 방식으로 주어지게 된 것인지를, 삶으로 확인하는 곳이, 바로 이 인생이라는 광야란 말예요. 왜 오병이어, 하늘의 만나를 설명하는 오병이어의 보리떡과 물고기가 등장하는지 이제 완결(完結)이 된 거예요.

 

보리떡은 간음한 여자, 부정한 여자가 제물로 드린 떡이에요. 그건 짐승이 먹던 거라 그랬죠? ‘하느님 제가 짐승 맞습니다. 하느님 떠나 다른 남자와 간음한 그런 여자 맞습니다. 죽어 마땅한 자 맞습니다.’라고 드리는 게, 보리떡이라 그랬습니다. 물고기는 풍요와 다산과 자아확장과 자아실현만을 꿈꾸는, 율법 아래의 아담들, 물고기라 그랬죠?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짐승이 먹는, 더러운 부정한 자! 더러운 간음한 자! 보리떡이 되시고, 율법 아래의 아담! 그 뱀이 되셔서, 우리에게 먹힌 거예요. 십자가 위에서 죽어서, 우리에게 먹힌 거예요. 그리스도교는 그 예수를 믿는 거예요.

 

떡과 물고기를 얻어내는 게,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그건 다 멸망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 보리떡과 물고기가 되어서, 그걸 전부 죽여 버리고, 여러분의 자아를 확장시키고, 발전시키고, 성숙시켜서, 하느님의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그걸 예수가 죽여야 사는 거예요. 여러분은요!

 

여러분이 고치 속에 들어가 죽어야, 나비로 부활한다니까요. 애벌레가 아이고 난 죽었네!’ 그 순간, 나비가 되는 거요. 여러분이 성공한 사람 맞는 거예요. 힘들고 어려운 삶? 하느님이 공연히 허락하시는 거 아니란 말입니다. 절대로 그런 세상 사람들이 성패의 근거로 붙들고 있는 그런 걸로, 여러분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判斷)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걸로 슬퍼하거나, 그걸로 좌절하거나, 그까짓 것 조금 얻어냈다고, 기뻐 펄펄 뛰지 마세요. 우리는 얼만큼 내가, 예수를 의존하는 자가 되었는가? ‘나는 진짜 예수 없으면, 안 되는 자다!’라는 이 고백을 얼마나 더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가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해야 되는 거요.

 

모세가, 이 인생을 어떻게 정의했어요? 이 인생은 어떤 거다?

(시편 90:9-10) 9 당신 진노의 열기에 우리의 일생은 사그라지고 우리의 세월은 한숨처럼 스러지고 맙니다. 10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 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모세가 정의한 성도의 인생이에요. 우리의 모든 날은, 주의 진노, 뭐요? 지옥의 백신! 지옥의 백신은 지옥이에요. 그러나 완전한 지옥이 아니라, 조끔만 지옥, 주의 진노란 말예요. ? 이렇게 살면 죽어! 이게 주의 진노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지옥이 오는 거예요. 인생은 그러한 지옥의 백신! 주의 진노로 감지가 되어져야 맞아요.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슬픔으로 신속히 지나가는 게 맞아요. 아무리 기쁘고 행복한 일이 일어나도 며칠 안가잖아요? 그리고는 또 다른 눈물과 고통과 슬픔이 또 닥치고! 그렇게 수고와 슬픔으로 점철(點綴)된 인생. 야곱의 고백처럼, ‘나그네 인생길 130년에, 심히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빨리 하느님께 가야지. 그 하느님과 함께 해야지!’ 이 고백하는 거예요. 그렇게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예수가 보이고 십자가가 보여요. 그들에게만 예수의 피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판알 튕기면서, 한 해를 잘 살았느니, 못 살았느니,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그러지 마세요.

보리떡에, 부정(不淨)한 물고기에 불과한, 그 광야의 시므온들을, 이렇게 말씀을 잘 이해하는, 반석인 베드로로, 생수를 뿜어내는 베드로로, 여러분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말씀의 전이자(轉移者)로 선거예요! 그러니 그것이 사람을 낚는 거예요. 그것이요. 그렇게 불러내신 그 하느님을 찬송(讚頌)하시면 돼요. 그러면 여러분은 성공하신 분입니다.

  

 

내것만이 옳다는 것은 아집이라 하지요. 보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진실~ 그것을 믿음이라 하지요.

한사람 아담으로 죄가 들어 왔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리도 나중 아담(예수)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하지요.

한 사람이 번역하여 쓴 성경도 원 성경과 뜻이 다를수 있다는거 잊지마시고

왜 저래? 마시고 참 길을 살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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