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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2 조회수2,881 추천수9 반대(0)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의 지면 중에 평화 책꽂이가 있습니다. 책을 소개하고 필자의 느낌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한영국 선생님은 정채봉님의 초승달과 밤배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주로 외국 작가의 책을 소개하였는데 이번에는 한국 작가의 책을 소개한다고 하였습니다.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미주가톨릭신문 홈페이지 지면보기 913일자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연좌제와 신분제의 사회를 살았습니다. 연좌제는 부모의 잘못, 특히 사상과 관련된 잘못이 있으면 자녀들 또한 영향을 받는 제도입니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없고, 정보원에 의해서 감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초승달과 밤배에서 할머니는 손자와 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손자와 손녀 역시 사상범의 가족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많은 사람이 연좌제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저의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었습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곤 했습니다. 연좌제의 벽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이 신장되면서 연좌제는 더 이상 삶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 가끔씩 큰 홍역을 치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Black Lives Matter'입니다. 지금 미국에 있는 흑인의 선조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Roots)'를 통해서 미국 흑인 노예들의 삶과 애환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기 전만해도 대부분의 나라는 신분제의 사회였습니다. 한국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천민(賤民)’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람이 그 신분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는 사회였습니다.

 

신분이 다른 사람과는 사랑할 수도 없었고, 사랑한다고 해도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재능과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 천하면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때로는 그 재능과 능력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피부색 때문에, 성별 때문에, 신분 때문에 차별 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 선언문은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양심을 가졌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갖고 있는 의견이나 신념 등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연좌제와 신분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에 따라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데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가난의 문제입니다. 가난은 사상과 신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은 물질과 재물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누면 해결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가난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굶주려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치료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이 없어서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가난한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소인은 지배하려 하나 공정하지 못합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각 악기의 소리를 존중합니다. 각 악기가 똑같은 소리를 낸다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지 못합니다. 각 악기는 저마다의 소리를 연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악기는 지휘자의 뜻을 따라 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나침판은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수는 있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화이부동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청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차분하게 이야기합니다. 믿음이 가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욥은 화이부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을 때도 감사했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거두어 가실 때도 감사했습니다. 재물이 많았을 때는 기꺼이 이웃과 나누었고, 재물을 다 잃었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욥을 고통과 시련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욥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20년 이상 도시 빈민을 위해 사목하는 동창 신부가 있습니다. 다른 사목을 하는 동창을 존중하고, 경청합니다. 자신의 사목을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늘 웃는 모습으로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화이부동의 삶을 사는 동창입니다.

 

동이불화의 삶을 사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배가 생명보다 중요하다며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는 어쩌면 동이불화의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장소 때문에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화이부동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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