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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도원에서 오늘 답장이 왔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2 조회수2,077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제 추석 오후에 수도원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3개월이라는 기다림 끝에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오전에 수련장 신부님으로부터 답장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수련장 신부님이시지만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땐 원장 신부님의 자격으로 프랑스에서 오신 분입니다. 다큐에서 스쳐지나가는 분으로 잠시 잠시 나오시는 분입니다. 언제 제가 이분을 글에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정말 이분을 가까이에서 뵈면 마치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의 모습이 이분과 같지 않을까 하는 게 얼굴에서 느껴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원주에 계신 신부님께 말씀을 드리니 아마 그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든을 넘기셨지만 거의 60년에 가까운 세월을 프랑스에 2년에 한 번 회의 때문에 가시는 걸 제외하곤 평생 수도원 내에서만 365일 기도로만 일생을 보내신 분인데 분명 하느님의 신성이 그 세월만큼 흘러들어갔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하셨습니다

 

108일에 수도원에 피정을 하러 오는 게 적당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12일이 개인적인 사정상 적당해서 두 번째는 수도원에 전화를 해서 원장 신부님의 허락으로 최종 12일에 들어가는 걸로 확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영어로 장문의 메일로 답장이 온 것입니다. 간단하게 날짜 정도만 알려주실 줄 알았는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과 당부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이제 잠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내용 때문에 많은 분에게 알려드리면 영적으로 유익할 것 같아서 공유를 하려고 올립니다. 사실은 이 내용이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메일로 여러 차례 주고 받았지만 한글로 보내주신 적도 있고 오늘처럼 영어로 보내주신 적도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영국 수도원에서도 계셔서 영어를 잘 구사하십니다. 조금 표현이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했습니다.

 

이번 피정이 그냥 단순히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어디 종교의 한 행사처럼 생각하고 또한 경험을 하는 것처럼 하는 그런 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카르투시안의 삶 안에서 또 신 앞에 자신의 모든 존재를 철저히 바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경험으로 생각을 하고 온다면 그건 하느님 앞에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철저히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다는 표현 밑에는 언더라인까지 하시면서 강조를 하셨습니다.

 

처음 답장이 온 것을 확인했을 때 긴장 속에서 어떤 내용의 메일일까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열어봤습니다. 처음 날짜를 언급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점점 후반부로 가면서 긴장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확실이 이 수도원은 포스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이런 팬데믹 시대에도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기도로 자신을 헌신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일을 보면서 여러분에게도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저녁 95분입니다. 지금 시간이면 그분들은 주무시고 있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2시간 30분 후 정도면 기상을 하실 겁니다. 잠시 기도를 한 후 새벽 1230분부터 밤기도에 들어가십니다. 이 생활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1365일 끊임없이 하십니다. 평생을 이런 생활로 보낸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일생을 이렇게 기도로 세상이 가장 악으로 물든 시간에 깨어 세상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육신을 초처럼 하루하루 태우며 자신의 몸이 완전히 사그라지는 날이 마치 이 세상에서 육신의 옷을 벗는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원주에 계신 신부님께 통화로 말씀을 드렸지만 저번 피정 때 원장 신부님과 한 시간 동안 면담을 하면서 저에게 울림을 주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언급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분은 스페인 출신인 신부님이십니다. 많은 카르투시오 수도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만약 후회를 하는 게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일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좀 더 하느님께 자신을 더 온전히 바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이해는 되지만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이런 생활을 하고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신부님, 하니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해도 우리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 순간 그 말씀에 전율이 왔습니다. 너무나도 감동이 되었습니다.

 

작년 1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이었지만 관심을 가져다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수도원에 들어갈 수가 없다면 모를까 들어가게 되면 이젠 더 이상 이런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 수도원은 세상 모든 거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이 마지막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그제 올린 글이 마지막 글이 되길 바랬습니다만 오늘 신부님께서 주신 메일을 보고서 이런 감응을 전달해드리는 것도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영적으로 유익할 것 같아서 자꾸 말을 번복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익하시길 바라는 뜻에서 한 것이니 이점 널리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를 위해 화살기도 한 번씩만 부탁드리겠습니다. 10월 말쯤에 피정 결과에 대해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부디 좋은 소식을 전해드렸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구요 하느님의 가호가 항상 풍성하게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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