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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루가복음 5:4-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3 조회수1,515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경바로알기 2020. 10. 3.

 

(루가복음 5:4-11)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 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 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 먹었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시몬 베드로의 장사하는 배, 다르싯의 배가 장사하는 배라 그랬죠? 원래 뜻이! 그 다르싯의 배를 소재로 해서, 인본주의적 신앙생활의 열매가 어떻게 맺히게 되는지에 관해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 조각난 그물! 그 조각난 그물이, 조각난 말씀이었죠? 조각난 말씀은 예수라는, 말씀전체가 예수로 결론이 나야 되는데, 이게 아니라 명령과 규례, 율법, 이런 걸로 보는 게, 조각난 말씀이란 말예요. 그래서 율법이, 규례가 그렇게 많은 거요. 조각, 조각, 조각! 이 전체가 예수인데! 조각난 그물로는 뭐 밖에 못 잡는다? 풍요와 다산과 증대! 자기 자존심을, 가치를 어떻게 해서든지 자랑하고 증명하려고 하는, 이 아담들만 건져 올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에서 말씀이 떨어지는데, 이게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 적용’, 율법과 규례 규범으로만 떨어지게 되면, 그렇게 물고기들만 걸리는 거예요. 물고기가 한 번 걸리면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아시죠? 대형 교회들을 한 번 의심해 봐야 되는 거요. 난태생, 물고기가 알을 얼마나 많이 낳아요? 그 물고기만 걸리는 거예요. 조각 조각난 그물에!

그래서 그 장사하는 배, 그게 구약에서는 성전이라 그랬어요. 성경에는 두 배가 나오는데, 하나는 말씀을 전하러 가는 배, 하나는 장사하는 배, 그런데 거의 장사하는 배를 탄다 말예요. 그래서 요나도 장사하는 배, 다르싯으로 가는 배를 탔단 말예요. 그런데 하느님이 결국은 이 말씀이라는 배, 이게 성전이에요. 성경에는 또 배를 성전과 대조를 한다 말예요. 성전이란 말예요. 옛 성전! 다르싯, 장사하는 배!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서, ‘너희들은 이 성전을 장사하는 곳을 만들었구나.’ 그런 거요. 옛 성전과 말씀을 전하는 참 성전, 말씀이신 예수가 참 성전이니까. 이 두 배가 등장한다 말이죠.

그런데 이 장사하는 배, 조각난 그물만 갖고 있는, 율법과 규례와 규범으로 말씀을 해석하는, 곡해하는, 그들의 배는 물고기만 잡고, 결국에는 바다에 빠지는 거예요. 거기서 배가 물에 잠겼다는 건,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서 만선으로 오면서, 이게 배가 철렁철렁 왔다는 게 아니라, 빠져서 가라앉았다는 거예요. 다 날라 갔다는 뜻이에요. 그게 역사의 종국이에요. 래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그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여태까지, 이 광야에서 맺은 열매 갖고 와봐!’ 했더니, 그 일만 명이, 오병이어! 율법만 갖고 오는 거요. 율법의 행위만 갖고 오는 거요.

그렇게 시몬의 배, 시몬이란 말은 시므온, 기근, 기갈, 광야, 사막이란 뜻이라 그랬어요. 아직 반석, 베드로가 안 된 거예요. 베드로가 반석이 되면, 거기서 생수가 터져 나와야 되는데, 아직 시므온이에요. 여러분 서신 서에서, 베드로를 시몬 베드로라고 부르는 거 봤어요? 없어요. 그에게 말씀이 들어가게 되면, 그는 베드로예요. 반석이에요. 그 때부터 말씀을 터뜨리는 사람이란 말예요. 그런데 아직 시몬 베드로란 말예요. 그가 배를 다 뺏기고, 배가 폭삭 주저 않았어요. 가라앉았단 말예요. 그리고 나서 예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세요.

(루가복음 5:8-11)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 먹었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그들이 배를 육지에 뒀대요. 육지가 뭐예요? 흙이거든요. 땅이에요. 그들의 옛 성전이, 땅에게 붙어버리고, 이제 그들은 새 성전인 예수에 의해, 머리에 띠 띠고 끌려가는 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냥 표피적으로만 보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 앞에서, ‘,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일으키실 수가 있어? 이 분이 하느님인 가봐.’ 하느님을 알아보고,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소서.’ 이렇게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그런 그림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시몬 베드로가 자기가 죄인인 걸 알았어요? 그 분이 하느님인 걸 알았어요? 나중에도, ‘주는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도, 그건 하느님이 잠깐 알게 해 주신 거라고 말씀했잖아요? 몰랐단 말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뭘 보더니, 깜짝 놀라고 무서워서, 그 발 앞에 엎드렸다고 이야기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걸 원어로 보면, 무릎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아래라는 단어는 없어요. 오히려 프로스무릎을 향하여 굴복하다가 아니라, ‘뚝 떨어지다.’ 이런 뜻이에요. 뚝 떨어지다!

여기에서 발아래 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고니는요, 히브리어로 바꾸면, 베리트예요. 신약 성경이 헬라어로 기록이 된 건, 이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히브리어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헬라어로 기록한 거란 말예요. 그러니까 원래 이 의미가 잘 해석이 안 되면,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가서 다시 이해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고니무릎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찾으면, ‘베리트’. 베리트가 명사인데, 이게 동사형일 때는 바라크예요. 바라크가 뭔지 아시죠? ‘’, ‘복이 되다’, ‘진리를 말하다, 복이 되다바라크예요. ! 그 복을 향해 몸을 던지다. 몸을 떨어뜨리다.’ 이런 뜻이에요.

지금 그림은 시몬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는 배,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졌잖아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 이 말씀이 떨어진 그 배! 말씀이 떨어졌는데, 이 말씀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말씀이 떨어져서, 그 말씀이 어떤 것을 이루어냈는데, 표징으로 보여줬는데, 물고기가 쪼개진 그물에 엄청 잡히고, 배가 가라앉아버린 거예요. 빠져버린 거예요. 그걸 보고, 이가 와서 발앞에(무릎), 자기 몸을 던져버린 거예요. 자 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말예요?

제가 요즘 헬라어, 히브리어를 조금 더 깊이 공부하는 있는데, 여태까지 저나 아니면 이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가 성경을 얼마나 불성실하게 표피적으로 보고 있어는 지가, 너무 선명하게 보여져요.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다시 쓰려고 해요. 그 전에 썼던 책을 다시 쓸 거예요. 죄송해요. 진짜! 그게 그건 줄 몰랐어요.

그런데 정말 성경은 예수 이외에는 일점일획도 할애(割愛)하지 않아요. 시몬 베드로, 즉 여전히 시몬이에요. 기근, 기갈, 사막, 광야! 이 시몬 베드로의 상태인 그 베드로가, ‘이를 보고라고 하는데, 거기서 쓰인 단어가 에이돈이에요.

헬라어에는 보다라는 단어가 호라오’, ‘에이돈두 가지가 있는데, 호라오는 어떤 본질까지를 읽어내는 걸 호라오라고 하고, 예수님이 뭘 보다 했을 때 호라오를 쓰는데, 에이돈이란 단어는 표피! 나타난 현상! 외양만 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에이돈에서 나온 단어. 이게 명사형으로 바뀌면, ‘에이도론이 되는데, 이게 아이돌, 우상이에요. 그러니까 표피적으로 왜곡되어 껍데기로만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시몬에게 말씀이 떨어졌는데, 이 시몬이 이 말씀을 알아먹었을 리가 없어요. 그 말씀이 어떤 걸 이루어냈어요. 이루어냈는데, 이 시몬이 그걸 보고, 표피적인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예수께 와서, 어디에 던져요? 몸을 무릎(발앞에), ‘바라크에 던졌는데, 바라크 !  ‘진리를 말하다인데, 오래된 진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거기, 그 복에다가 자기를 던지더라는 거예요. ? 기적이 일어났거든요. 사람은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더 큰 존재라고 느낄 때, 그리고 자기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해냈을 때, 일차적으로 두려움을 느끼죠? 거기서 엎드려지는 거! 그 이야기하는 거요.

왜 이 이야기를 성경이 굳이 여기에다 기록해 두었느냐 하면, 오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당(예배당)에서 이 일이 똑같이 일어난다고요. 시몬 베드로가 그 무릎에 엎드려서, ‘, 바라크에 엎드려서, ‘외양에 엎드려서,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소서.’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진짜 죄인인 걸 알았을까요? 모른 거예요.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자기보다 큰 자 앞에서, ‘나는 당신보다 작은 자입니다.’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아직 시몬인 이 사람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느님을 안다고 그러고, 죄가 뭔지를 안다고 그러고, 그리고 뭘 봤다고 그러고, 말씀을 이해했다고 그래요. 그리고는 그 앞에 엎드려요. 솨하, 프로스큐네요, 카라이게 다 엎드린다는 단어거든요. 이게 무슨 말로 쓰이느냐 하면, 예배하다라고 쓰여요. 프로스큐네요가 예배잖아요? 솨하예배란 말예요. 그냥 표피적으로 어떤 걸 경험하고, 감정적으로 뭘 느껴서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예배할 수 있고, 엎드릴 수 있고, 굴복할 수 있고, 헌신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얼마든지 자기를 죄인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본질(本質)을 모르는 거, 성경은 거기까지 경고(警告)하고 있는 거요.

(신명기 4:19) 19 눈을 하늘로 향하여 해와 달과 별 등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를 보고 그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만천하 다른 민족들에게 주어 섬기게 하신 것들이다.

이게 고 풀이라는 거요. 솨하, 카라예요. 얼마든지 인간들은, 우상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면서, 그 앞에 예배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신명기 5:7-9 상반절) 7 너희는 내 앞에서 감히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8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습을 본따 새긴 우상을 모시지 못한다. 9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마찬가지예요. ‘솨하, 카라예요.

(신명기 8:19) 19 만일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를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 가 섬기고 예배한다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다짐해 둔다. 너희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이거요. ‘솨하, 카라.’ 인간들은 이렇게 우상에게도 얼마든지 절할 수 있어요. 우상이라니까, 다른 종교의 형상(刑象)들을 생각하지 마세요. 하느님이라는 우상! 어떨 때 하느님이 우상이 되느냐 하면, 그 하느님이, 단순히 큰 분, 그리고 내 앞에 어떤 기적을 이루어 내신 분, 그래서 나는 그 앞에서 까불다가는 큰 코 다칠 그런 존재!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 앞에 항복(降伏)해야 하는, 요 순종! 요 예배는 우상 섬김이에요. 그걸 굴종(屈從)이라 그러는데, 그 굴종은, 만약에 내가 상대보다 힘이 더 강해지는 일이 생겨나면, 언제든지 그를 밟을 수 있는 걸 굴종이라 그래요.

그걸 하느님이 난 그걸 저주해!’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시몬의 이 이야기는 저주받을 이야기이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지금 시몬이 부름을 받는 장면인데, 벌써 하느님을 기쁘게 하면 어떻게 해요? 십자가 앞에서도, 하느님의 눈물을 쏟게 한 존재인데. 우리는 너무 사람 위주로 성경을 보니까, 아무나 다 위인을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은, 선택받은 아담들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그들의 삶을 부수어내는 거예요.

(루가복음 5:10-11)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이제 예수님이, ‘너 이제 나에게 붙들렸다. 이제 나랑 가자.’ 어디? 천국가자! 그리고 어떻게 된 거요? 모든 것을 뺏기는 거예요. 인생을 차압당하는 거예요. 거기! 여기에서 예수님이 시몬에게(시몬 베드로도 아니고), 다시 사막, 말씀이 없는 기근, 기갈의 시몬에게, ‘내가 이제 너는 지금 이 모양이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래요. 조그래오라는 단어는, 살아 있는 걸 살리기 위해 생포하는 거요. 살아 있는 걸 산채로 생포하는 거.’ 그러니까 살아 있는, 산 자인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낚아 올리게, 살리기 위해 낚아 올리는 자로 만든 다는 거요. 어떻게? 말씀을 담아서요. 반석, 베드로로 만들어서.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그렇게 만들 거야라는 건, 지금 베드로가 고기 잡고 뭐 여러 가지 일한 거는, 다 꽝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앞으로 너를 이렇게 만들어낼 거야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조각난 말씀으로, 자아 확장과 자아실현, 자아증대의 욕망(慾望)으로만 살아가는, 부정한 물고기들을 건지는 건, 그건 복음전파라고 하지 않아요. 그건 전도(傳導)라고 하지 않는다 말예요. 전부 , 내 복, 내 구원, 내 천국, 내 문제 해결, 내 질병 치유(治癒). 이런 사람만 붙드는 거요. 모르죠, 여기도 조각난 그물로 지금 그런 물고기들만 걸려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상태는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난태생들의 특징이거든요.

베드로는 이제 자기가 진짜 얼마나 불가능한 죄인인지를 삶 속에서 증명(證明)하고, 증거(證據)하는 자로 살아야 돼요. 왜 자기가 보리떡이며, 물고기인지. 똥인지, 성경이 말하는 폭로 당하게 삶을 살게 되는 거요. 그래서 교회의 기초(基礎)! 이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으니까, 교회의 대표(代表)라고 보시면 돼요. 그가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의 쪽팔리는 장면에는 항상 들어가 있는 거요. 맨 마지막에, 가장 부끄러운 일을 하죠. 예수님을 욕하면서 저주하는 그 자리까지 내려가는 거요. ‘내가 똥이네요.’ 이거를 성경이 드러내주는 거요.

여러분, 성경에 베드로가 뭐 대단한 일을 한 걸 적어논 거 있어요? 밥 먹다 도망가다가, 바오로에게 욕먹어! 고넬리오 집에 가랬더니 안 가다가, 하느님한테 욕먹어, 부인할 거야 그랬더니, 안 부인한다고 그러다가 또 망신당해. 죄다 그런 거죠. 성경은, 교회가, 베드로가, 뭐 했다는 거에 관심이 없어요. 그가 얼마나, 자기가 보리떡이고, 물고기인지, 똥인지를, 드러내는 가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그를 어떻게 하느님이 베드로, 반석으로 만들어냈는가에 관심이 있다니까요. 베드로를 고넬리오 집에 보낸 거, 여러분 고넬리오가 무슨 그가 경건(敬虔)하고, 그 기도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뭐 구원받은 건 줄 아세요? 아녜요. 그럼 꼭 베드로가 거기에 가야 돼요? 베드로 자체가, ‘저런 이방인들은 구원받으면 안 되는데라는 똥 같은 율법의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고넬리오라는 사람을 들어서, 베드로를 가르친 거예요. 고넬리오에게 영생을, 성령을 주러 간 게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고넬리오에게 가기 전에, 하느님이 이미 보자기에 이것저것 내려 보내서 보게 하고, 가르친 다음에 보낸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가 , 그런 거군요.’라고 안 거지, 고넬리오가 득을 본 게 아녜요. 고넬리오를 통하여 이 베드로가 뭔가 배운 거란 말예요. 이 똥이! 이 물고기가! 이 보리떡이! 이 시몬이!

그렇게 성도는 이 역사와 인생 동안에, 왜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창조로만 완성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 처절하게 체휼하고, 교훈 받는 삶을 살아야 되는 거, 열심히 노력해서 하느님나라 건축에 동참하는 훌륭한 자가 되는 걸, 목적으로 삼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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