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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마태 26:31-3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5 조회수1,756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경바로알기 2020.10.05.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마태복음 26:31-35)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 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오늘 밤 너희는 다 나를 버릴 것이다. 32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난 후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34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5 베드로가 다시 '저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모든 제자가 나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지키겠습니다.’ 목숨 걸어 십자가를 막아서겠다는 거죠. 교회의 기초인 베드로! 그러니까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거요. 베드로는! 의지가 대단해요. 자기는 절대로 예수를 떠나지 않을 거고, 예수 편에서 목숨 걸고 투쟁하겠다는 거예요. 모든 제자들이 다 똑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죠? 그런데 결론은 어떻게 되었어요? 모두가 다 예수를 버리고 떠났어요. 저주하며 부정하고 떠났다니까요. 배신한 거죠? 누구의 모습이죠? 가롯 유다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가롯 유다는 제자 열두 명 중에 제일 악마 같은 놈, 모자란 놈이 아니라, 열둘을 대표하는 거예요. 그래서 유다예요.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 나오죠? 가롯유다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가롯 유다는, 우리의 대표인 거지, 우리가 손가락질하며, ‘적어도 나는 은 삼십에 예수를 안 팔았다!’ 이럴 대상이 아니라니까요. ‘내가 마귀입니다. 내가 옛 뱀입니다. 내가 유다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해야 하는 자들이란 말예요. 이게 우리의 실존(實存)이에요. ‘유한(有限)’은 절대로 무한(無限)’의 편을 들어낼 수가 없어요.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도 물어요., ‘하느님 사랑하세요?’ 하면, ‘가만 있어봐, 도대체 하느님이 누구야?’ 여기서부터 출발해요. 내가 진짜 하느님을 아나?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그 위에 계시는 그 하느님을 내가 사랑한다고? 아냐,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는 거지!’

여러분 진짜 우리가, ‘무한, 창조주의 편을 피조물이 들 수 있냐고요? 창조주가 피조물의 편을 들어주어야 되는 거요. 그래서 성경에는 치사랑은 없어요. ‘내리 사랑만 있어요. ‘무한의 권세가 유한을 덮는 걸 은혜라 그러고, 거기서 발생 되는 걸 구원이라 그래요. 그게 창조예요. 그냥 은혜로 덮어내는 거예요.

그걸 인정하게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며,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먼저 알아야 돼요. 아니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인, 독사의 새끼들임을 먼저 알아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발뒤꿈치를 물어서, 예수의 피를 빨지 않으면, 절대 존재일 수도 없는 자, 그게 우리잖아요? 예수의 십자가 피가 아니면 우리는 존재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뱀이지 뭐예요, 우리가?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이 과정이 생략(省略) 되어버렸어요. 그냥 구원에서부터 시작해버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 은혜롭게 서로 주고받는 거예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나도 그런데.’ 내가 뱀이고, 내가 하느님의 원수이며,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는 자각과 인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아는데.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태복음 26:20-25) 20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21 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지만 사람의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25 그 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하고 묻자 예수께서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제자들과 유다가, 똑같은 단어로 똑같은 말을 하죠. 저는 아니지요? 메치, 에고 에이미, 랍비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혹시 납니까?’라고 이렇게 의심이 나서 물어본 게 아니라, 나는 아닙니다. 선생님!’ 이란 뜻이에요. 아주 단호하게, ‘나는 아니죠? 확실해요 나는 아닙니다. 선생님!’ 이 뜻이에요.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들이 다 나를 배반할 거라 그랬고, 이 중에 하나가 나를 판다 그랬어요. 그런데,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을 판 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그 날까지 제자들이 뭘 갖고 싸웠어요? 누가 영의정할 거고, 누가 좌의정, 누가 우의정 할 거냐를 갖고 싸웠잖아요? 그러면 그게 뭐예요? 예수 팔아 내 유익 챙기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예수 판 거지 뭐예요? 그리고 배신했잖아요? 유다와 그들이 뭐가 달라요? 다를 거 하나도 없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유다를 비롯한 나머지 열한 제자가, 전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나는 아닙니다. 확실해요. 나는 아니죠, 선생님?’ 이렇게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요게. 유다가 뱀이라 그랬으니까, 마귀라 그랬으니까. 마귀들의 속성인 거예요. 나는 아녜요. 내가 왜 예수를 팔아요? 나는 예수를 위해 목숨 바칠 사람이에요.’ 요게 마귀라는 거예요.

우리는 요 자리로 올라가고 싶어 하지 않나요? 신앙생활을 통하여 이 자리로 올라가는 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여정이다. 이렇게 배워왔고, 이렇게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그들한테, ‘마귀다!’라고 이야기한다 말예요. 발뺌을 해요, 난 아니에요. 쟤는 어떨지 몰라도!’ 이렇게 다름과 차이를 주장하는 거, 요게 뱀! 마귀라는 거예요.

성도는 그러한 말씀의 진술 앞에서, , 제가 예수 배신하고, 예수 팔아버린 마귀 맞습니다. 그래서 제게 십자가의 피! 하느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라는 자신의 처음 자리의 고백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고백을 건너뛰고, 아예 생각도 안 해요. ? 여기(성당)서 얘기를 안 해 줬거든요. 피차 불편한 이야기를 뭐하러 하고 듣느냐고요? ‘당신은 구원 받았어요. 행복하죠? 찬송하세요.’ 여기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생략되어버렸다니까요. 그리고는 이제, ‘나는 아니지요?’라는 이 다름과 차이를 증명하는 걸,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고, 달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건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편이 되어버린, 아담과 하와가, 서로에게 죄를 전가했던 동일한 모습인 거예요. 난 아녜요. 쟤 때문이에요.’ 얘는 난 아니에요. 쟤 때문이에요.’ 그리고 어디까지 올라가요? ‘하느님이 만들어낸 저 여자 때문이에요.’ 하느님까지 탄핵(彈劾)하는 거죠. 나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서! 고게 마귀란 말입니다.

왜 그렇게 내 자존심을 챙겨야 돼요? 내가 선악과 먹고, 하느님이 됐거든요. 내가 하느님인데, 내가 마귀 새끼라는 것을 어떻게 인정하느냐고요. 난 하느님이 됐다니까. 선악과 먹고! 요게 율법주의 아래의 인간들이란 말예요.

심지어 자신의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에에 투신(投身)하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살(自殺)도 불사하는 것이 마귀의 실체인 거예요. 마귀인 유다가, 예수를 판 자신의 행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거기에 메타노이아, 회개라는 단어가 쓰여요. 가롯 유다가 진짜 회개했을까요? 그런데 왜 성경이 거기에 메타노이아, 회개란 단어를 쓸까요? 교회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잘못된 회개(悔改)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회개는 정말 진짜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의 삶 속에서 은혜에 의존(依存)하는, 그러한 하느님 절대의존의 고백이 나오는 걸 회개라 하는데, 그게 회개의 목적지거든요. 그런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자기가 한 일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게, 회개가 아니란 말예요. 뭘 근거로 가롯 유다가 죄를 모르고, 엉터리 회개를 했다고 하는가?

죄는, 인간의 목숨을 바쳐서, 상쇄(相殺)해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녜요. 인간의 목숨 일억 개를 갖다 줘도, 상쇄 안 돼요. 그 말은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생명이라는 건, 인간의 최선의 노력으로도 생산해내거나, 쟁취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그런 말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열심과 노력이 뭐요? 목숨 바치는 거예요. 그거 이상 할 게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가롯 유다가 이거 바치면, 그 죄 상쇄되겠지 하고 바친 거거든요. 그건 죄가 뭔지 모른 거란 말예요.

그래서 우리도 이 신앙의 절정! 그걸 순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가롯 유다식의 순교를 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많아요. 그건 다른 종교에도 많아요. 그런 순교는요! 마귀는 끝까지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기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일을 해요. 유다가 진짜 회개를 했다면, ‘제가 예수님 판 자 맞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이렇게 갔어야지, 내 죄는, 내가 내 목숨 끊어서 책임질게. 이리로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회개가, 가짜 회개라는 겁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 앞에, 자신의 존재를 투신해야 되는 거예요. 마귀는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투신해요. 그건 순교 아녜요. 그건 죄()예요. 제사자장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도 유다가 던지고 간 은 30, 절대 만지지 않았어요. 부정한 거라고 聖殿庫에 다시 안 넣었어요. 안 만졌어요. ‘도로 가져가!’ 너무 너무 값어치 없게 취급했죠? , 이거 나그네의 밭이나 사!’ 즈가리야서에 나오는 거예요. ‘밭이나 사!’ 이렇게 가치 없게 여기는 거예요. 그 피 값을!

그리고 우리가 이걸 받으면, 예수의 죽음과 내가 관계있는 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예수의 죽음과 관계없는 자라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그 돈을 안 만진 거예요. 부정한 돈이라고! 이게 난 아니죠?’예요. ‘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나 예수 안 죽였어요. 쟤네들과는 다르거든요.’ 그게 마귀란 말예요.

예수님께서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뭐라 불렀어요? ‘너희 아버지는 마귀다.’ 그거 너 마귀라는 뜻이에요. ‘너희 아비는 마귀야.’ 그리고 독사의 새끼!’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뭐라 그래요? 예수님 보고, 네가 마귀다.’ 그러죠. 네가 바알세불의 권능을 힘입어, 이적을 행한다.’ 그러잖아요? 서로 마귀라 그러는 거요. 그러니까 율법주의 아래에 있는 자들은, 예수님을 마귀로 여겨요, 진짜 하느님을 마귀로 보고, 마귀를 하느님으로 섬기는 게 율법주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유익(有益)을 위해서 예수 믿는 거 아닌가요? 나의 천국! 나의 구원! 나의 보람! 나의 가치! 나의 변화! 좀 저급한 사람은, 질병치유! 일취월장! 성공! 번영! 귀신 쫓아냄! 문제 해결! 이런 걸 위해 예수 믿죠. 그러면 예수 팔아 나의 유익을 챙긴 유다! 뱀 새끼와 우리가 지금 뭐가 다르냐고요?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천국 위해서 예수 안 믿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거 위해서 우리 예수 믿잖아요? 여전히 우리는 올바른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뱀 새끼 같은 삶을 살고 있단 말예요. 지금요! 그런데 그게 올바른 신앙이라고 너무 많이 들어왔고 세뇌 되어서, 이게 그냥 옳은 건줄 알고 가는 것뿐이라니까요.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그게 뱀이라고. 이 땅에서. ‘맞습니다. 제가 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은혜 베풀어주세요.’로 가야 되는데, 이 다름과 차이를 만들어내는 그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인 줄 알고, 그걸 많이 만들어낸 사람을, 훌륭한 롤 모델을 삼아 쫓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거 신앙생활 아니란 말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하느님 앞에서의 자기 자존심 챙기기라는 마귀적인 행태는, 인간 역사의 실체이며, 실존인 거예요.   자기 자존심, 이걸 목숨을 버려서까지도 지키려고 하는 게, 세상 왕이란 말예요. 진짜 왕이 와서, 이 왕을 박살내버리고, 폭로시켜서 인정시키고, 수긍(首肯)시킨 다음에, 이거 박살내버리고, 진짜 하늘 왕의 자리로 끌어들이는 게 역사, 신앙생활이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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